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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May 29. 2024

복잡한 이식 절차

[진 빠지게 해서 포기하게 만들 생각인건가?}

아들에게 신장을 공여하기로 마음먹고 난 뒤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을 하면 모든 게 끝이다.

이렇게 간단히 생각했는데 일이 생각보다 많이 복잡했다.


내가 공여를 하겠다고 결정을 했고,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이 받겠다는 건데 뭐가 이렇게 절차가 많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이런 절차들이 왜 필요한지 설명했지만 그 당시는 납득되지 않았다.

탁상행정이 낳은 불편한 현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수많은 이식수술의 부작용들을 해소하기 위해 수정되고 보완되며 오랜 시간을 거쳐서 다듬어진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코디네이터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런 일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같은 모지렁이한테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친절한 선생님이다.

내 몸과 마음(정신)의 검사가 동시에 진행됐다.

머리꼭대기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듯 속속들이 검사가 진행이 됐다.

신장과 관련이 있어서인지 24시간의 소변을 받아오라고도 했었는데 직장에 다니면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중에 그걸 들고 가는데 사람의 몸에서 이렇게 많은 물이 나오고도 체중이 변함없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덕분에 공단의 검진 외에는 건강검진을 해본 적이 없던 내가 고가의 건강검진을 했다.


정신과 진료에서는 예전에 정신과에 다녔던 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더니 그 병원의 소견서를 첨부하라고 해서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때가 언제인데....

모르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길래 '말을 안 할걸 그랬다'는 생각을 사무치게 했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상담이 사회복지사였는데, 그때는 가족 모두 동참을 해야 했다.

내 의사도 중요하지만 가족 모두 동의해야 한다고 했다.

딸은 직장에 있어서 남편과 아들만 참석을 했다.

딱 봐도 바늘도 안 들어가게 생긴 깐깐한 남자 복지사는 마치 나를 취조하듯 했다.


"왜 이식하기로 결심하신 거죠?"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아들이 투석을 하고, 엄마인 제가 공여할 수 있는데 당연히 하는 거 아닌가요?"


내 표정을 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어땠을지 짐작은 간다.

복잡한 절차를 거치며 짜증도 났고, 무엇보다 예전에 다니던 정신과 소견서까지 첨부하라 하니 너무 오버한다는 생각에 컴플레인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났었을 거다.


"당연하다고요? 그럼 투석하는 아들에게 이식을 안 해주는 엄마들은 다 이상한 건가요?"


싸우자는 건가?

뭐지?  왜 저렇게 고자세야?

마치 내 신장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 같이...

그는 친절하고 상냥한 코디네이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다.


직접 표현하진 않았지만 상담 중에 언뜻 비친 내용은 이식은 병원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보건복지부에 보고를 하고 승인이 나야 가능한데 자신이 서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짜증을 넘어 이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모범 답안이 뭔데? 그럼 그대로 대답해 줄게'


그러나 그의 비위를 잘못 건드리면 정말 나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 수술이 불가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하든 이 시간만 잘 지나가자는 마음으로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지 않으려는 내 모습이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다.

자식일이니까...

자식 문제 앞에서는 무릎까지도 꿇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깟일로 일을 망칠 수야 없지.


나에게는 갑상선기능저하라는 지병이 있기는 했으나 이식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검사 중에 알게 된 신기한 일은 아들의 혈액형을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생아 때는 생각이 안 나고 초등학교 때 혈액검사에서 분명 O형이라는 결과를 받았었는데 A형이라고 하니 아들도 나도 놀랐다.

뭐가 맞는지 약간 의심이 갔지만 빅 5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틀릴 리가 없지 않은가.

한 가지 걱정이 덜어졌다.

나와 혈액형이 달랐다면 혈장분리교환술을 비롯해 더 어려운 수술이 추가되었을 테고, 혈액형 부적합 신장이식일 테니 아무래도 면역반응이 더 안 좋았을 것 같다.


검사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수술이 진행 됐다.

무지한 나는 아들의 주치의가 수술을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건 외과적 수술이라 외과 담당이란다.ㅋㅋ

수술 전 딱 한번 내 수술을 담당할 의사와 마주했다.

활기가 넘치는 젊은 의사는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했다.

두 개의 신장중 좀 더 건강한 신장을 이식할 것이고, 무엇보다 공여자의 건강이 최우선이므로 지금이라도 생각이 달라졌으면 말을 하라고 했다.

가정의 분위기 때문에 억지로 결정했다면 자기가 다른 이유로 부적합이라고 말을 해 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택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수술 전날 입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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