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식

[미안함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까]

by 한걸음씩

2019년 1월 어느 날.


야근으로 회사일이 한창 바빴다.

거래처 사장이 업무차 방문해서 술을 사준다고 했다.

화장실에 갈 시간도 쪼개 써야 할 판에 원치도 않는 회식자리는 정말 민폐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하니 와서 먹고 가라는 대표의 말을 우린 거절할 수 없다.

투덜투덜 대며 사무실 근처에 있는 참치횟집으로 들어서니 마주 앉은 대표와 거래처 사장은 이미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이럴 때는 싫으면 싫다고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있는 MZ들이 부럽다.


저녁을 먹으라며 불러낸 우리에게 술잔을 권하는 대표.

어차피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야근을 하든 주말에 출근을 하든 알아서 할테니 상관없다는 건가?

암튼 그날 술을 좀 마셨다.

그런데 문제는 뒷날에 찾아온 숙취였다.

평소 술을 좋아해서 반주까지 마시는 나는 숙취가 별로 없다.

좀 심하게 마시면 속이 울렁거려서 시원한 콩나물국이나 라면국물이 당긴다는 게 숙취라면 숙취였다.

헌데 이번엔 두통이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강도 높은 통증.

내키지 않는 술자리라 그런가 싶었다.

두통은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계속 됐다.

병원에 증상을 이야기하고 처방을 받은 약을 복용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다른 병원에 찾아가서 기존에 처방받은 약을 보여주며 효과가 없으니 다른 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다.


"이건 정말 급할 때만 드셔야 합니다."


라며 노란색 알약을 추가로 처방해 줬다.

마약성 진통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의사 말대로 나는 '정말 급했'으므로 약국에서 그 약을 바로 먹었다.

빈속이라서 인지 구토가 나고 어지러웠다. 거울을 보니 얼굴색이 노랗게 변해갔다.

약을 먹고 느끼는 어지러움이나, 먹지 않고 느끼는 두통이나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앓은후 상태는 호전되었다.


그 일이 있은 두 달 후.

언니 집에 놀러 갔는데 일본 여행에서 사케를 사 왔다며 한잔 따라 주었다.

술꾼들은 알지만 사실 사케는 술이라고 할 수도 없는 정말 약한 술이다.

사케가 내 입맛에 맞지도 않고 그날따라 술 생각이 별로 없어서 예의상 한잔만 마셨다.

그런데 그다음 날 또 그 증상이 찾아왔다.

심한 두통.... 그것도 일주일... 똑같이....


그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술을 너무 사랑해서 취중 실수를 밥 먹듯 하는 나는 금주를 위해 항상 기도한다.

내 힘으로 도저히 끊을 수 없기에 하나님의 힘으로 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이었다.


'혹시.... 하나님?'


정말로 나는 그날 이후로 술을 끊었다.

그 통증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던지 무알콜 맥주도 입에 대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열 달 동안 내 몸에 남아 있을 알코올들이 모두 빠져나갔다고 여겨질 무렵.

신장이식의 때가 되었다.

아들의 투석 이야기를 들은 교회 집사님 한분이 말했다.


"왜 집사님이 이식을 해줄 생각을 안 하세요?"

"저도 이식할 수 있어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다.

병원 주치의도 아들에게 누나한테 졸라보라는 말을 농담처럼 했을뿐 나는 언급도 안했다.

당연히 또래의 신장을 이식받아야만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집사님은 자신의 지인도 내 나이정도인데 아들에게 이식을 해줘서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머릿속에서 전등이 하나 켜진 것처럼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천번이고 만번이고 수술해야지.

왜 그동안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그다음 주에 일어났다.

주일예배 때 유아세례가 있었는데 그때 간증을 한 아기아빠가 바로 신장을 이식받은 그 아들이었다.

하.... 정말 이런 타이밍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다음날 바로 병원에 전화해서 신장내과 주치의 진료예약을 했다.

대학병원이라 예약이 쉽지 않은데 신기하게도 예약이 빨리 잡혔다.

거북등 신장내과 주치의가 나의 신장공여 질문에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당연히 어머니의 공여도 가능합니다.

다만 어머니의 신장이 나이만큼 늙었기 때문에 기능이 좀 떨어질 수는 있어요.

말하자면 3,000cc 배기량의 차량에 1,000cc 엔진을 장착한 것과 같죠.

하지만 아드님 삶의 질이 많이 나아지는 건 확실합니다."


더 이상 고민할 일도, 고려해야 할 일도 없었다.

내 몸에 있는 것을 주어 아들의 투석이 끝난다면 어디 신장뿐이랴.

하나뿐인 생명까지도 줄 수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실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