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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May 15. 2024

실종

[아픈 아들은 잠시도 걱정을 놓을 수 없다]

"어머니, 오빠가 연락이 안 돼요.

오후에 저랑 있을 때 어지럽다고 했었는데..."

늦은 밤 스르르 막 잠이 들었을 때 아들의 여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몇 시에 어디서 헤어졌는데?"

투석이 없는 날이라 외출을 했고, 워낙 야행성 동물이라 내가 잠이 든 다음에 들어오는 날이 많았던 터라 별생각 없이 나도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 무슨 일인가.


"00 역 앞에서 헤어졌어요.

근데 전화를 하니까 꺼져있어요."

알았다며 급히 전화를 끊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 친구 말대로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몸이 성한 상태가 아니라 걱정이 되면서 가슴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우선 112에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위치를 추적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화를 받은 관제센터에서는 평소에 외박을 자주 하는 편이냐,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느냐 등등의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요즘은 가족이라고 해도 위치추적을 함부로 할 수 없다며 이해를 구했다.

그놈에 정보보호 때문에.


"가끔 외박을 했지만 연락이 안 되는 경우는 없었고요.

지금 투석 중이라 걱정이 돼서요"


통화를 마치고 5분도 안되어 순찰차가 집으로 왔고, 나에게 동승을 요구했다.

"아니... 위치 추적만 좀 부탁드린 건데.... 제가 이렇게 가야 하나요?"

"네. 지구대에 잠시 가셔서 확인하실 게 있어서요."


잠자다가 대충 걸쳐 입고 나온 겉옷에 부스스한 내 모습과 달리 지구대안의 경찰들은 초롱초롱하고 활기가 넘쳤다.

어김없이 만취한 민원인의 횡설수설한 소음을 뒤로하고 응접세트가 마련된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드님 사진 저장된 게 혹시 있나요."

사진 찍을 때마다 얼굴을 가리고 뭐라고 해대는 통에 잘 찍지는 못해도 몇 장 갖고 있기는 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이상한 표정으로 찍은 엽기적 사진밖에 없으니 쓸 것이 없고...


사진을 전송해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모텔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만 해주고 더 이상은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것도 개인정보인 모양이다.


아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나니 갑자기 모든 게 창피했다.

모텔에 잠든 아들이 실종됐다며 호들갑을 떨고 난리를 쳤던 것도, 폭탄 맞은 머리를 하고 지구대에 앉아 있는 것도, 그 아들이 모텔에서 꿀잠을 자고 있다는 것도...


출동했던 경찰이 볼펜과 서류를 내밀며 작성해 달라고 했다.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일종의 진술 서였던 것 같다.


'위치추적 한번 요청했다고 이런 거까지 작성해야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이유를 설명했다.


그 당시 분당에서 청년이 자살한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지 얼마 안 지난 상태라 청년들의 연쇄적 자살 문제로 이어질까 봐 특별히 지시가 내려온 상태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고가 들어온 건에 관하여 절차대로 보고가 올라가야 하고, 내가 지구대에 전화를 했더라면 지구대에서 해결이 되면 그걸로 끝이지만 112로 전화를 했기 때문에 결과보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지구대에 전화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거니와 외우기 쉬운 112로 전화를 걸기가 훨씬 수월하니 당연히 그리 한 것인데 잠자다 말고 지구대로 소환이라니...


지구대에서 요구하는 진술서인지 뭔지를 작성하고 나서 풀려(?) 났다.

한밤중의 해프닝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날이 새기 시작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 에미한테 이 고생을 시킨 아들에게서는 해가 중천에 뜰 때쯤 전화가 왔다.

전화기 충전을 하니 부재중전화가 떴던 모양이다.


"엄마 전화했었네?"

"전화기 보고 전화 한 거야? 경찰 안 갔었어?"


생사만 확인하고 간 건가?

꽐라가 된 친구들과 함께 잤고,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된 줄 몰랐다고 했다.

친구라면 밥 먹다가도 수저를 놓고 나서는 녀석이니 그럴 법도 했을 테다.

밤사이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고 나니 다 큰 아들한테 너무 유난스럽다고 날 타박했다.


'네가 그냥 그런 아들이냐'

아픈 손가락이라는 걸 자식이 알면 이미 철이 든 것이겠지.


친구 좋아하는 그 성격이 질병에 갇혀 살아야 하니 이렇게라도 숨을 쉬어야 할것 같아 더이상 나무라지도 못했다.

다만 엄마든 여친이든 연락이 안되면 걱정이 많이 되니 알고나 있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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