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으라

[감당은 결국 혼자의 몫]

by 한걸음씩

막연하게 '언젠가는'이라고 생각하던 투석이 현실이 됐다.

죽을 때까지 오지 않기를 바라던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팔의 혈관 확장을 위해 병원에서 준 그립볼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아들은 쉬지 않고 운동을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밝았다.

아니...... 밝아 보였다.

우울하게 있는 것보다 훨씬 낫기는 하다.

하지만 보이는 겉모습처럼 이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늘 있었다.

나도 남의 마음을 읽는 재주는 1도 없는 것 같다.


이틀에 한번 투석을 하고 오면 아들은 피곤해하며 종일 잠만 잤다.

하루는 말짱하고 하루는 중환자 같은 컨디션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투석과 식단에 관한 정보가 병원에서 준 설명서 하나로는 부족한 것 같아 책도 사서 보고 먼저 경험을 한 선배환자들의 도움을 받고자 신장환우카페에도 가입했다.

아들이 다니는 투석실엔 온통 노인들 뿐이라는데 환우카페에 보니 젊은 환자들도 무척 많았다.

투석을 하면서도 일상생활을 하는 건강(?)한 사람도 젊은이들을 보며 실낱같은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아들처럼 마르고 왜소하진 않겠지.


아픈 자식을 둔 엄마 마음이 이렇겠지.

아들을 위해서라도 평생 일을 하며 보살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감사한 것은 투석환자에 대한 의료비 보조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한 달 투석비로 20만 원을 웃도는 돈만 지불하면 된다는 것이다.

남편의 수입이야 워낙 불규칙하기도 하고 그걸 믿고 살아오지 않았으므로 무게감이 어깨를 눌렀다.


아들이 부지런히 전완근 운동을 한 덕분에 한 달이 되지 않아 혈관 투석을 시작할 수 있었다.

투석을 오전에 하든 오후에 하든 그날 하루는 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 좋아하던 게임조차 하지 않았다.

퇴근하면 아들 방문부터 열어보게 된다.

오늘은 컨디션이 좀 나을까...


퇴근하고 아들 방 문을 열어보면 늘 같은 분위기다.

암막커튼까지 내리고 깜깜한 방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자고 있다.

살며시 문을 닫고 얼른 옷을 갈아입는다.

손만 씻고 바로 주방으로 간다.


'오늘 저녁은 뭘 하지?'


메뉴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럴 겨를도 없고 여유도 없다

퇴근하면서 마트에 들러 눈에 보이는 몇 가지를 주섬주섬 들고 나와 계산한다.

주로 아들이 좋아하는 식재료로 저절로 손이 간다.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으로 저녁상을 준비하다 보면 잠에서 깬 아들이 나와서

"오늘 반찬 뭐야?"

부스스한 얼굴로 나를 반갑게 맞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건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라 약속을 잡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다.

그게 아니라도 아들의 저녁식사때문에 모임이나 만남들이 많이 정리했을 것이다.


투석을 하지 않는 날 아들은 하루도 집에 붙어 있지 않았다.

친구도 만나고 그 와중에 가끔 여행도 갔는데 투석 때문에 친구들보다 먼저 출발해서 오는 것이 늘 아쉽다고 했다.

나의 무수한 잔소리와 눈물에도 끄떡없이 마이웨이를 즐기던 아들이었는데 투석을 하니 어쩔수 없이 꼬박꼬박 집에 들어왔다.


투석이 반복되면서 팔의 혈관은 점점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팔뚝 안에 커다란 소시지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 위로 수많은 주사 바늘 자국이 딱지 위에 더덕더덕 겹쳐졌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환우카페에 올라온 다른 환자들의 사진을 보며 아들도 점점 그런 모습이 되어 갈 것을 생각하니 많이 낙심이 되었다.

신경 써서 먹인다고 먹여도 아들의 피부는 점점 칙칙해지고, 체중도 빠져갔다.

먹은 것이 전부 몸 밖으로 배설이 되버리는 걸까?

흡수가 전혀 안 되는 것 같았다.


"엄마, 투석하면 점점 소변이 줄어들어서 나중엔 안 나온다는데 나는 아직 건강한가 봐.

소변 소리도 우렁차고 "


성격이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희망을 찾으려 애를 썼다.

내가 늘 자기를 걱정하는 것을 아는 터라 이런 농담으로 상황을 가볍게 만들려고 했다.

아들은 안 좋은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다.

장애우 카드를 만든 날엔

"장애인 되니까 혜택이 많아~ 지하철도 공짜야 엄마."


장애인인걸 즐기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들에게서는 어두운 표정이나 말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비해 낯빛은 항상 어두웠다.

다크서클도 점점 진해지는 것 같고, 피부도 푸석해지고 윤기가 없다.


일은 할 수 없지만 용돈은 필요할 테니 조금씩 집안일을 도우며 용돈을 벌라고 했다.

용돈이라 봤자 담배값정도였다.

투석을 하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했다.

투석이 생활의 일부가 될 즈음엔 내 친구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파트타임 알바도 했다.

아들의 형편을 잘 알고신경을 잘 써주는 친구라 마음이 놓였다.

현금으로 용돈을 주지 못해서 소위 '엄카'라는 것을 준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내 카드를 사용하니 아들의 동선을 알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가끔은 철없이 쓰는 것 같아 잔소리를 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아들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투석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이 몸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게 너무 끔찍했거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나이도 이렇게 젊은데 투석에 발목 잡혀서 하루하루 기계에 의존하며 산다는 게 나는 정말 너무너무 싫었어.

하나님이 나한테 앙심을 품고 이런 일을 주는 것 같아서 원망스러웠어.

하루하루 억지로 살았고 언제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했어.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아서 많이 외로웠어.

근데 그때 나를 견디게 한 말이 있었어 엄마.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목사님이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그냥 버텨보자.

살아만 있어 보자 생각했어."


그랬구나...

내 앞에서는 웃고 농담을 했지만 너는 그때 피투성이였구나.

죽고 싶었구나.

피를 철철 흘리는 너를 보며 나는 너의 농담에 웃고 있었구나.

그런 엄마였구나...


아들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듯 듣고 있었지만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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