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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Apr 24. 2024

절대 이것만은...
이라고 하면 꼭 찾아온다.

[투석 시작]

아들은 몇 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혈액과 소변검사를 했다.

신장이 나쁜 건데 왜 고혈압약을 처방받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설명을 들었을 때는 납득이 됐다.

물론 금세 잊어버렸다.

알아듣기 쉬우라고 내 수준에 맞춰 설명을 해주었을 텐데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또 버스를 타야 갈 수 있는 대학병원.

같은 행정구역 내에 있어도 집 앞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으니 두어 번씩 환승을 해야 했지만 아들은 그 길이 귀찮다거나 힘들다는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담당의사는 간단한 검사이고, 약처방만 받으면 되니 집 가까운 곳에 신장내과가 있으면 옮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병원이라는 곳이 의사와 10분 상담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은 한 시간도 넘게 걸리고고, 오가는 길까지 합하면 반나절은 허비하게 된다.

그렇게 말해주니 오히려 고마웠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장내과가 있어서 옮겼다.

검은 머리털이 하나도 안보일만큼 온통 흰머리뿐인데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탱탱해 보이는 의사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구부정한 어깨로 모니터만 바라보며 차근차근 말하던 대학병원 의사와는 대조적인 모습에 오히려 더 신뢰가 갔다.

대학병원 소견서를 빠른 눈으로 읽고 난 후 의사는 아들에게 자기가 군의관 출신이고, 입영 전 신체검사도 많이 해봐서 아는데 아들의 경우는 군면제도 받을 수 있다며 마치 자신에게 면제의 권한이 있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엄마 들었어? 나 군대 면제래"


아직 한참 먼 이야기 같은데도 아들은 그게 그렇게 좋은가보다.

좋아하는 아들을 보며  오히려 군대에 보낼 정도로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은 애써서 좋은 말만 듣고 기억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몸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 텐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부러 잊고 싶었겠지.




대다수의 부모들이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나도 아들이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공부를 안 해도 너무 안 해서 남쪽에 있는 지방대학교로 유학을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춘기 때 나를 속인 일들을 생각하면 나쁜 머리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기발한 일들이 많은데 그 머리로 공부를 했다면 지방대는 가지 않았겠지... 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아들이 지원한 대학의 학과는 내 기억에 모집인원과 지원인원이 별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전공 또한 적성과 관심보다는 점수에 맞춰서 선택을 한 것이라 공부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의 잔소리와 관심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했던 아들의 지방 유학은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었다.

학교 근처에 얻어 놓은 원룸은 친구들의 사랑방이 되어 남녀 할 것 없이 드나들며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잠까지 재워주고 있었다.

엄마가 알면 잔소리폭탄이 떨어질 것을 분명 알고 있음에도 긴장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무절제한 생활들을 고백하곤 하니 내가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원거리에 있는 아들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나도 아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다'는 말에 속아주는 게 더 편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우리 집이 가난했기에 용돈을 거의 보내주지 못했다.

용돈을 충당하기 위해 그곳에서 짧은 알바를 여러 가지 했는데 그중 최악의 알바로 꼽은 '양파 캐기'는 요즘도 가끔 들먹이는 알바영웅담이다.

뙤약볕 아래서 양파를 캐다보면 어느 순간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이러다가 죽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한다.

한여름의 정오가 얼마나 위험한데 그런 일을 했냐며 이건 영웅담이 아니라 무식한 흑역사쯤으로 묻어두라고 했다.

속으로....


지금도 불가사의한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아들의 여자 친구관계다.

엄마인 내 눈으로 봐도 아들의 외모는 매력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키도 작고 몸은 왜소해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니 남자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데 아들은 여자친구가 없던 적이 별로 없다.

처음 입학했을 때는 cc로 만난 같은 학과 동기를 사귀었는데 그 친구가 가장 오래 사귄 여자 친구이다.

3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친구와 헤어진 후로는 여자 친구와의 교제가 그리 길지 않았다.


가난했던 살림에 용돈을 제대로 주지 못하니 아들은 온갖 방법을 통해 비용을 충당했다.

게임으로 모은 아이템을 파는 것은 부지기수고, 휴대폰을 사서 공기계로 팔지를 않나, 나도 모르게 학교를 휴학하기도 했다.

휴대폰 값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어서야 나에게 발각이 되기도 하고 나 모르게 휴학한 일은 최근에 알았다.

모자란 한 학기를 바로 얼마 전에 수료했다.

서른이 넘은 복학생이라니,,,,


나의 계산으로 대학 4학년이라 여기던 어느 날.

아들이 다니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평소에 아들 혼자 다녔기에 나와 연락할 일이 별로 없는데 전화가 와서  많이 놀랐다.

멀지 않은 병원이었는데 가는 그 길이 굉장히 멀게 느껴졌고, 많은 생각을 했다.

좋지 않은 일은 분명한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만일 최악의 상황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나를 미리 생각하며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나름대로 마음을 다잡고 병원에 들어섰다.


순서가 되어 들어가면서 의사의 안색을 먼저 살폈다.

모르는 병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슴이 방망이 질을 하는 건지...


"아들한테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갑자기 신장이 너무 나빠졌어요.

이 정도 수치면 쓰러졌어도 벌써 쓰러졌을 텐데 젊으니까 서서 걷고 다니는 거예요.

당장 투석하지 않으면 큰일 나요.

준비하세요."


의과대학이 문과가 아니라 이과인 것은 확실하다.

말은 논리적이고 이론적이지만 상대의 감정을 생각하는 단어는 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나 혼자 듣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인 아들이 옆에 있는데 어떻게 저런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을까.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의사는 그렇게 팩트만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태를 파악하는 것도 늦고 감정에 치우쳐 오히려 시간을 허비할 것 같기도 하다.

의사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에게 투석 절차를 설명했다.


'팔에 있는 혈관을 통해 투석을 하게 되는데, 현재는 혈관이 너무 약하니 혈관을 키워야 한다.

한 달가량 혈관을 키우는 동안 가슴에 구멍을 내어 카테터를 삽입하고 임시로 그곳을 통해 투석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시술은 00 병원에서 할 테니 먼저 다녀온 후 다시 이 병원으로 오면 된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곧바로 아들과 함께 00 병원으로 향했다.

거리가 좀 멀어서 전철이나 버스를 타는 게 더 나았지만 기운이 너무 없어 택시를 탔다.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는데 아들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창밖만 바라봤다.

눈치 빠른 아들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내게 농담을 하고 웃으며 내 기분을 살폈다.


"이렇게 상태가 안 좋아질 때까지 몰랐니?

분명 몸에 이상이 있었을 텐데..."


나는 기운이 쭈욱 빠진 상태로 아들에게 힘없이 물었다.


"가끔씩 다리 힘이 빠지고 어지러울 때가 있었어.

밥을 제대로 안 먹어서 그런 줄 알았지.

그러면 한참 앉아 있으면 괜찮아지곤 했으니까.

엊그제 감자전에 막걸리를 마셨는데 감자전에 있는 칼륨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


버스 정류소나 길거리나 어지러울 때마다 아무 곳에나 앉아 있었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혼자서 그랬을 생각을 하니....


"밥은 왜 안 먹었는데? 돈이 없어서?"

"아니, 맛있는 게 없어. 뭘 먹어도 맛이 없더라고."


뭘 먹어도 맛이 없다고?

집에서 밥 먹을 때 보면 저렇게 먹는데도 살이 안 찌는 거 보면 신기하다 싶을 정도인데?


아들은 집에만 오면 입맛이 싹 돈다고 했다.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으면 밥 두 공기가 뚝딱 들어가는데 식당에서 먹는 밥은 이상하게 맛이 없었다고 했다.

한 번씩 올라오면 반찬이라도 좀 해줄걸...


나는 그냥 내 삶에 지쳐서 자식은 그렇게 방치를 해두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데....

나는 왜 강하지도 못할까.

왜 내 삶조차 버거워서 아들을 이지경까지 내버려 둔 걸까...

또다시 죄책감이 밀려왔다.


병원에서 카테터 삽입을 하고 가슴에 붕대를 붙이고 나오면서도 아들은 농담을 하며 웃었다.

하나도 안 아프다고.

저놈에 개그본성을 누가 말려.

그러나 애써 나를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웃는다는 걸 안다.

엄마가 자기 아플 때 신경 써주는 게 너무 좋다고 하면서도 엄마가 우울한 건 싫을 테니까.


그렇게 아들의 투석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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