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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Apr 11. 2024

동네 소아과의 오진

[판단은 내 몫. 누굴 원망할 필요도 없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의 일이다.

처음에 미열에서 시작하더니 며칠간 열이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올랐다.

열이 나면 아이들이 좀 쳐지거나 얼굴에 홍조를 보이기도 하는데 아들은 열 빼고는 여느 때와 다른 것이 전혀  없었다.

활기차게 잘 놀고먹는 것도 잘 먹었다.

동네 소아과에서는 흔히 있는 열감기라며 해열제 처방을 했다.

기침도 안 하는데 열이 이리 오래갈 수 있냐고 했더니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사나흘이 지나니 아이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물도 못 넘기고 토해냈다.

아무래도 동네 소아과 원장의 오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릴 때 종종 입원했던 중형 병원을 찾아갔다.

대형 병원처럼 시설이 좋지는 않아도 어지간한 검사는 가능하고 무엇보다 그곳의 소아 1과 주치의는 지금 생각해도 명의 중 명의다.

의사는 아들의 상태를 설명하자마자

"역류검사를 해 보시죠"라고 말했다.

요관으로 특수 약물을 투입해서 신장으로 역류하는지를 검사하는 방법인데 아들의 고열만으로 어떻게 그 진단을 내리게 됐는지 의사도 대단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의사의 예상대로 아들은 소변이 신장으로 역류하는 '방광요관역류'였다.

그것이 무슨 병인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전혀 모르는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의사는 그때부터 분주했다.

여기저기 대형병원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병원은 거의 다 한것 같다.

"3개월이요? 너무 길어요. 응급으로 가능한 건 없나요?"

아들은 열만 날뿐 별로 심각한 것 같지 않은데 왜 저렇게 급하게 하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 지금 바로 아산 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도착하시면 담당 직원이 나올 거예요.

서둘러서 빨리 가세요."

평소에 아이가 아파서 죽는다고 울어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정도로 침착의 여왕이던 주치의가 저렇게 허둥대다시피 일을 진행하니 심각한 병인 것은 맞나 보다.


구급차를 타고 아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주치의 말대로 흰가운을 입은 건장한 젊은이가 휠체어를 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아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휠체어에 앉히니 어린 아들은 신이 났다.

그 작은 날개짓이 얼마나 큰 태풍을 몰고 올지는 아들도 나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산병원에서도 모든 일은 속전속결이었다.

입원실 배정을 비롯해 각종검사들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드디어 담당의사와의 면담시간.

뭐라 뭐라 길게 설명을 했던 것 같은데 내용은 대충 이렇다.


양쪽 신장으로 노폐물이 모여서 요관을 통해 방광에 소변으로 모인다.

요관은 방광의 옆에 위치해 있어서 소변이 모일수록 요관을 압박해서 역류하는 걸 방지하는데 아들의 경우는 요관이 선천적 기형으로 위로 연결이 돼서 그대로 역류했다.

때문에 현재 신장이 많이 망가진 상태고, 앞으로 투석이나 이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수술은 잘못된 요관을 떼어 내서 방광 옆쪽으로 다시 연결하는 것이다.

수술을 하지만 재발 할 수도 있다.

바로 다음날 아들의 수술이 진행됐다.

수술시간 내내 교회의 유년부 전도사님이 오셔서 대기실에서 계속 기도해주셨다.


아들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입원실에 오자마자 춥다며 개구리처럼 몸을 웅크리는 모습을 보고 다들 놀랐다.

아프지도 않냐며 어떻게 몸을 그렇게 막 움직이는거냐고...

나도 몇번의 수술을 해봤지만 마취가 깨면 옴짝달싹 못하고 누워있었는데 아들은 참 신기하기도 하다.


아들이 어리니 여성환자 병동에 배정이 되었는데 비슷한 수술을 한 중년 여성이 대여섯 명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어린애가 어쩌다가 그런 수술을 했냐며 혀를 끌끌 차도 나는 별로 실감이 안 났다.

일주일가량 입원하고 퇴원하면서 앞으로 같은 병으로는 다시 병원에 올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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