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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Apr 17. 2024

제발 아프지만 말아라

[나도 그러고 보면 엄살대장]

요관 수술 후 6년.

학교에서 건강검진이 있었다.

검진이라고 해봤자 키, 몸무게, 소변, 혈액검사가 전부인 간이검사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 간단한 검사에서 아들엑 이상소견이 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단백뇨가 의심되니 병원에 가서 검사한 후 소견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였다.


가까운 동네 병원에 통지서를 보여주며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다시 했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말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니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라."는 소견을 받았다.

이미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말 자체가 '너무 걱정할 일'이 아닌가?

여하튼 그래서 나는 근심을 잔뜩 안고 대학병원 신장 내과 교수와 처음 마주하게 됐다.


한눈에 봐도 60은 훌쩍 넘어 보이는 얼굴에 거북목이 심한데 의자까지 잔뜩 당겨 모니터에 붙을 지경으로 앉아서 상담하는 내내 나와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정신과가 아니라 신장내과이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말을 듣기 좋게 포장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유감스럽게도, 절망적이게,,,라는 말을 아들 앞에서 여러 번 해서 저 사람이 정신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아들 앞에서 그렇게 한 것은 정말 잘한 것 같다.

아들도 자기 병을 제대로 알아야 관리를 할 테니까.


그때부터 아들은 약을 먹기 시작했다.

의사는 처방을 하면서 이 약은 신장을 고치는 약이 아니고 투석과 이식의 시기를 미루는 역할만 할 뿐이라며 아들은 언젠가는 투석도 이식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언젠가는'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어린 아들에게 고혈압 약을 먹이기 시작했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방문하면 하나같이

"이렇게 어린애가 벌써 혈압약을 먹어요?"였다.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되니 그냥 일상이 되었다.


신장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체질인 건지 모르겠지만 아들은 키도 잘 크지 않았고 살도 붙지 않았다.

그러니 대학교 1학년이 되어도 교회에서는 초등학생들이 형, 형 하며 반말을 했다.

한 번은 아들이

"야, 나 너네 선생님이야. 어디서 반말이야?"

라고 했더니 저학년 초등학생이 그러더란다.

"에이~ 딱 봐도 6학년인데 무슨 소리야."


웃으라고 아들은 그 말을 했지만 나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마음만 아파할 줄 알았지 요즘 엄마들처럼 성장호르몬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프지만 말고 자라기만 바라고 있었다.

의사가 말하는 '언젠가는'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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