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의 일이다.
며칠째 미열이 있어 동네 소아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열이 나면 아이들이 좀 쳐지거나 얼굴에 홍조를 보이기도 하는데 아들은 열 빼고는 여느 때와 다른 것이 전혀 없었다.
활기차게 잘 놀고먹는 것도 잘 먹었다.
소아과에서는 흔히 있는 열감기라며 해열제 처방을 했다.
기침도 안 하는데 열이 이리 오래갈 수 있냐고 했더니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사나흘이 지나니 아이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물도 못 넘기고 토해냈다.
아무래도 동네 소아과 원장의 오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릴 때 종종 입원했던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대형 병원처럼 시설이 좋지는 않아도 어지간한 검사는 가능하고 무엇보다 그곳의 소아 1과 주치의는 지금 생각해도 명의 중 명의다.
달걀형이 작은 얼굴에 갸름한 턱선과 교양있는 말투로 귀하게 자란 것 같은 외모의 여의사가 실력까지 좋았다.
그녀는 아들의 상태를 설명하자마자 바로 검사처방을 했다.
"역류검사를 한번 해 보시죠"
요관으로 특수 약물을 투입해서 신장으로 역류하는지를 X-ray로 관찰하는 방법이다.
아들의 고열만으로 어떻게 그 진단을 내리게 됐는지 의사도 대단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의사의 예상대로 아들은 소변이 신장으로 역류하는 '방광요관역류증'이었다.
그것이 무슨 병인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전혀 모르는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의사는 그때부터 분주했다.
여기저기 대형병원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빅5 병원은 거의 다 한것 같다.
"3개월이요? 너무 길어요. 응급으로 가능한 건 없나요?"
아들은 열만 날뿐 별로 심각한 것 같지 않은데 왜 저렇게 급하게 하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 지금 바로 아산 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도착하시면 담당 직원이 나올 거예요.
서둘러서 빨리 가세요."
평소에 아이가 아파서 죽는다고 울어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정도로 침착했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저렇게 허둥대다시피 일을 진행하니 심각한 병인 것은 맞나 보다.
구급차를 타고 아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구급차에서 내리자마자 흰가운을 입은 건장한 젊은이가 휠체어를 밀며 우리에게 왔다.
아마도 병원구급대원이 이동중에 통화를 한 모양이다.
말짱하게 두 발로 걸을수 있는 아들에게 휠체어에 앉으라고 했다.
철없는 아들은 신이 났다.
그 작은 날개짓이 삶에 얼마나 큰 태풍을 몰고 올지는 상상도 못한채.
아산병원에서도 모든 일은 속전속결이었다.
입원실 배정을 비롯해 각종검사들이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진료실 앞에서 숨을 돌릴때쯤 간호사가 이름을 불렀다.
주치의 모습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조차.
그렇지만 주치의가 설명한 내용은 뚜렷하게 기억난다.
양쪽 신장으로 노폐물이 모여서 요관을 통해 방광에 모인다.
요관은 방광의 옆에 위치해 있어서 소변이 모일수록 요관을 압박해서 역류하는 걸 방지하게 되어 있다.
아들의 경우는 요관이 선천적 기형으로 옆이 아닌 위로 연결이 돼서 소변이 차면 그대로 역류했다.
때문에 현재 신장이 많이 망가진 상태고, 앞으로 투석이나 이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수술은 잘못된 요관을 떼어 내서 방광 옆쪽으로 다시 연결하는 것이다.
수술을 하지만 재발 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투석이나 신장이식을 하게 되는 날이 온다.
언젠가는....
그 날이 올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들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말하는 사람들이니까.
바로 다음날 아들의 수술이 진행됐다.
수술시간 내내 교회의 유년부 전도사님이 오셔서 대기실에서 계속 기도해주셨다.
너무 너무 고마웠다.
입원기간 동안 들으라면 분홍색 미니카세트와 복음성가 테입을 선물로 주셨다.
정신이 없긴 했으나 보답을 하지 않은것이 후회가 된다.
덕분에 아들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커다란 환자복을 입은 아들은 보통의 수술환자 모습이 아니었다.
아프다고 끙끙 앓지도 않고, 마취 덜깬 얼굴로 비몽사몽 하지도 않았다.
춥다며 온몸을 동그랗게 말고 엎드려서 달달 떨었다.
나도 수술을 여러번 했지만 아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는게 신기하다.
기도 덕분일것이다.
아들이 어리니 보호자인 나를 배려해 여성환자 병동에 배정이 되었다.
6인실에는 중년 여성들이 비슷한 수술을 한 후 회복중이었다.
나이가 들어야 걸리는 병인데 어린애가 어쩌다가 그런 수술을 했냐며 궁금해 못견디는 표정들이다.
여차저차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할테니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회진을 올때마다 의사는 회복이 빠른 아들을 보고 놀랐다.
수술부위 상처가 아니라면 절대 환자 같지 않은 모습이다.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