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역국이 먹고 싶어.
아들을 위한 미역냉국
서른 넘은 아들이 독립하여 사는 것이 이상할 일도 아니고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 아들이 배달음식과 정크푸드를 즐기는 식습관이 아무래도 환자에게 좋을 것 같지 않아 걱정이 되어 한마디라도 하면
"내가 알아서 해"
라는 말로 듣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다.
그러니 뭐가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해주는 일이 잔소리 열 마디보다 낫다 여기고 해주는 편이다.
암진단 문자를 받은 날 아들은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날이 더우니 미역 냉국이 어떠냐 했더니 오히려 좋다며 저녁에 먹으러 온다고 했다.
칼퇴근을 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와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주방으로 갔다.
미역을 물에 담가 놓고,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오이, 양파, 청양고추, 마늘...
냉국에 들어갈 재료들을 부지런히 썰어서 아들이 오기 전에 저녁 밥상을 준비했다.
'언제쯤 도착하니?'
도착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톡을 했다.
'집에 왔는데 너무 피곤하네.
엄마 내일 갈게'
그럼 진작 연락을 좀 주지...
서운한 생각은 1초면 충분하다.
몸이 안 좋은 걸까.
아니면 마음이 많이 우울해서 그러나?
이런저런 걱정이 또 꼬리를 문다.
궁금한 게 많은 나의 답톡은 간단하다.
'그래. 그럼 내일 와'
아들은 엄마의 이런저런 질문이 귀찮다.
그러니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게 아니면 말을 아껴야 한다.
다음날 저녁 아들이 왔다.
무슨 말부터 물어야 할까.
"기분은 좀 어때?"
"그냥... 좀 얼떨떨한 정도? 별거 아냐"
나에게는 이런 것쯤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이려 애쓰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걱정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어제 만들어 적당히 맛이 든 오이미역 냉국에 감자조림과 꽈리고추 멸치볶음등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저녁상을 차렸다.
"어제저녁에 냉국 생각나서 잠이 안 오더라.ㅋㅋㅋㅋ 안온걸 바로 후회했지."
앉은자리에서 냉국을 두 사발이나 들이키는 모습을 보니 내 배가 부른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서 누나와 카페에 간다고 나서면서
"엄마도 같이 갈래?"
하고 묻는다.
형식인걸 안다.
내가 서운해할까 봐 평소에 신경을 쓰는 아들의 마음을 알기에 눈치 없이 따라나설 수 없다.
피곤해서 쉬고 싶다며 둘이 나갔다 오라고 내보냈다.
동생을 보내고 저녁에 혼자 들어온 딸의 방에 따라 들어갔다.
그나마 아들이 지 누나랑 대화를 많이 하는 게 다행이고 그 누나가 나랑 대화를 잘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어떤 거 같니?"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땐 아닌 거 같아.
아무렇지 않다가도 불쑥불쑥 화가 난대.
왜 자기한테 이렇게 질병이 몰아서 오는 건지 모르겠다고"
아무렇지 않다는 말로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통해 갑상선 결절의심 소견을 듣게 되었는데 그 당시 했던 스트레스 검사에서 아들은 높은 점수가 나왔다고 했다.
'정신과 상담 필요'
평소 아들의 말을 듣다 보면 세상에서 저렇게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때가 많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하니 마치 모든 상황을 즐기는 사람 같다.
그런 아들이 왜 그렇게 스트레스지수가 높은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다.
자식을 가장 잘 아는 게 엄마 같지만 가장 모르는 사람이 엄마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음식, 옷 입는 취향처럼 보이는 것을 잘 알면 속까지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한다.
엄마라서 말 안 하고 숨기는 것이 많음을 외면하기 때문이겠지.
뭐라도 해서 스트레스라는 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지만 그런 내 마음이 스트레스에 먹이를 줄수도 있다.
어렵다....
나도 일상을 살아내느라 24시간 아들을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시도 아들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기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