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일은 없다.
나에게 닥치면 어떤 일도 아무것도 아닐 수 없다.
갑상선 암을 '갑또(갑상선암은 로또)'라고 부른다 해도 나에게 찾아올 때는 이런저런 염려를 다닥다닥 붙여서 함께 온다.
아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너무 진행이 된 상태는 아닌지,
혹시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된 건 아닌지 하는 거였다.
그리고 수술이 늦어져서 악화가 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내비쳤다.
신장이식수술을 한 서울대 병원의 진료 예약이 10월로 잡혔고, 암검사를 했던 협력병원에서 추천한 삼성의료원은 9월 예약이다.
진료예약일뿐 수술은 그보다 더 늦어지겠지.
아들에게는 그것도 불안을 더 하게 했다.
반면 나의 가장 큰 걱정은 아들이 마음을 놓아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투석을 할 때 모든 희망에서 손을 뗀 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모든 걱정들을 한방에 눌러버렸다.
그제 오후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회 소그룹 리더형이 소개해 준 병원이 있어서 가보려고 예약을 했단다.
주일에 소그룹 모임에서 암 이야기를 했더니 마침 얼마 전 초등부 목사님이 갑상선 암 수술을 하셨다면서 전화를 걸어 병원을 물어봐주었는데 그 모습에 감동을 먹었단다.
(아프면서 아들은 조울증 환자처럼 눈물도 웃음도 비정상적으로 많아졌다.)
어제 오전으로 예약을 했다고 해서 나는 오후에 급히 연차 신청을 했다.
성인이라 혼자 가도 되지만 그 길이 또 얼마나 고독할까 싶어서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연차를 냈지만 늦잠 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나서서 병원에 도착하니 아홉 시.
예약 30분 전이다.
검사 결과지를 비롯한 서류를 접수하는 아들의 얼굴을 멀리서 지켜봤다.
잔잔하게 번지는 미소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입으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화가 난다고도 해 놓고 얼굴은 웃는다?
이걸 물어보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도 났다가 눈물도 났다가 한다고 한다.
정신과에 꼭 가보라고 했다.
몇 군데를 오가며 행정적인 처리가 끝나고 드디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을 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재미도 없다.
별로 길지도 않은 시간인데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한참을 지나 진료실 문이 열고 나오는 아들의 표정은 서류 접수를 할 때처럼 밝은 모습이다.
"뭐래?"
굵고 짧게 물었다.
"일단 수술 날짜는 다음 달 말로 잡았어"
"왜 그렇게 늦게 잡았어? 빨리 안된대?"
나의 다그치는 마음을 아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 또한 알아서 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대화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음을 감지했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아들과 내가 염려하던 문제들에 대해서 주치의에게 명확하게 답을 얻은 것 같다.
"일단 나는 1기래.
내 나이는 2기 이상이 될 수가 없다네?
그리고 갑상선 암도 몇 종류가 있는데 나는 전이가 되지 않는 암 이래.
이름만 암이지 암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착한 암이고.
수술하고 바로 퇴원을 해도 되겠지만 호스를 몇 개 달고 있다가 3일 후 제거해야 한다고 해서 그냥 입원하겠다고 했어.
날짜는 내가 말했어.
그때 해도 괜찮다고 해서.
회사일도 그렇고, 교회 수련회 스텝일도 그렇고 해서...
그리고 암은 아무것도 아니고 이식한 신장이 더 중요하니까 CT촬영은 하지 않겠다고 했어.
조영제가 신장에 안 좋대.
내 몸을 많이 생각해 주는 것 같아서 따뜻하게 느껴지더라."
아녀석 '더 이상 질문금지'를 하듯 확실하게 설명을 한다.
궁금했던 것과 걱정했던 문제들에 대해 아주 명쾌하게 답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된단다.
나도 그렇다.
게다가 이곳이 크리스천 병원이라 더 마음이 놓인다.
예전에 미션상담센터에서 상담받을 때 상담사가 한 말이 있다.
모든 내담자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있다고.
그때 그 말이 마음에 많이 위안이 됐다.
아픈 사람은 의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고, 그 의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더 든든하다.
이 병원도 그럴 것 같다.
환자를 위해, 수술과 치유를 위해 함께 기도할 것 같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점심을 먹고 아들과 카페에 갔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엄마.
내가 이제 마음 고쳐먹고 교회도 잘 나가고, 초등부 스텝으로까지 자원했는데 왜 암을 주신건지."
아들의 말에 여전히 원망이 섞여 있는 것 같다.
"넌 암이 벌 받는 거라 생각해?"
"당연하지."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
그게 아니야 어쩌고 해 봤자 아들은 듣기 싫을 것이다.
내가 암에 걸려봤던 것도 아니니 자기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아들아.. 만일 암이 하나님을 떠나서 벋는 벌이라고 생각한다면 목사님 암은 어떻게 해석될까.
목사님이야말로 하루종일 성경책만 보시는 분인데..."
"그러네... 목사님도 암이셨지...."
그 말을 하면서 나도 목사님의 암이 이렇게 아들을 살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 목사님은 당신의 건강보다 '목사님도 암에 걸리냐'라고 실족할지 모를 그 한 사람 때문에 안타까워하셨다.
물론 수술과 항암을 통해 목사님은 건강을 돌려받으셨고, 그 보든 과정은 체중감소와 탈모의 모습들을 통해 지켜봤다.
우리 교회뿐 아니라 요즘은 암환자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누가 암에 걸렸다고 해도 크게 충격을 받지 않는다.
아들의 일도 그렇게 놀라울 일은 아니지만 엄마인 나에게는 힘든 일이다.
안 그래도 아들에게 별로 거절을 하지 않지만 앞으로는 더 그럴 것 같다.
미역국이 먹고 싶어.
파김치가 먹고 싶어.
하나씩 둘씩 메뉴가 추가되겠지.
해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