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다 스윈튼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사진 :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아이 엠 러브 영화'를 보다가 흑백 모드로 찍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루카와 틸다는 11년간 이 프로젝트를 함께 구상했다.
시작은 2002년 The Love Factory라는 단편 영화에서 틸다의 감정을 클로즈업으로 탐구한 것이었다.
그 속에서 사랑, 의존, 외로움 같은 주제들이 논의됐고, 틸다가 "사랑은 감상적 개념이 아니라 급진적이고 전복적일 수 있다"고 말한 것이 핵심 영감이 되었다.
루카는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 부르주아의 몰락을 다룬 가족 서사에 매료되었고, 이걸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고 싶었다. 3명의 시나리오 작가와 작업. 첫 번째는 문학적이고 너무 서사적인 접근, 두 번째는 간결한 구조, 세 번째는 편집감과 리듬을 살리는 수정 과정을 거쳤다.
루카는 처음엔 신이 미니어처로 세상을 창조하는 오프닝을 구상했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
대신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들(비스콘티, 안토니오니 등)의 클래식한 타이틀 디자인을 본떠 오프닝을 구성했다. 그의 편집자 발테르 파자노가 “고전적으로 해보자”고 조언했고, 그게 결정적이었다.
루카는 "화면 중심보다 주변이 더 흥미롭다"고 말한다.
부유층의 삶은 그들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기계 위에 존재하는데, 대개 사람들은 이 뒷면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부르주아의 번영 뒤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진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는 과거가 더 좋았다고 믿는 인물들의 향수와 부정에 대한 비극이다.
자본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착취해야 유지되며, 그 구조는 시대가 변해도 동일하다고 지적한다.
즉, 부의 아름다움 이면에 존재하는 부정과 감정 억압을 보여주려 했다.
루카는 이 가족이 이탈리아의 은유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직설적인 은유보다는 모호함과 아이러니를 더 중시한다. 겉보기에 화려한 가족이 실상은 감정의 부재와 부정의 미학으로 유지되는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틸다 스윈턴을 염두에 두고 캐릭터 '엠마'가 창작되었다. 그녀가 맡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엠마는 원래 다른 출신으로 설정됐지만, 결국 러시아 출신으로 바뀌었다.
엠마는 러시아 출신의 이민자로서 이탈리아 상류층 세계에 흡수되었다.
러시아 배경은 그녀가 돌아갈 수 없는 곳, 즉 정체성과 단절된 곳으로 설정되었다.
러시아어로 질문하는 사람에 대해 그녀는 바로 알아듣지 못한다. 옆에서 다른 이가 번역을 해주고 나서야 이해를 한다. 자신의 러시아 실제 이름도 그녀는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엠마는 장남과 이야기를 할 때만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이는 감정적으로 공유되는 과거의 마지막 고리이다. 그러므로 장남의 죽음은 곧 그녀의 정체성의 마지막 잔재가 사라지는 절멸의 지점이다.
틸다는 러시아 억양의 이탈리아어를 구사하기 위해 실제로 러시아어와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말한다. 러시아 억양의 이탈리아어 밖에 구사하지 못한다고. 그녀의 영화 준비의 과정에서 언어가 중시된 이유는 언어를 통해 엠마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자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틸다 스윈튼은 멋진 배우이다.
에마는 자신의 감정을 거의 표현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감정을 나누는 대상은 아들과 연인 안토니오이다.
틸다는 이 영화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즉흥성의 부재"로 설명한다. 엠마는 자신의 언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살아가기에, 항상 번역하고, 억누르고, 즉흥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을 어떻게 억누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이다.
루카는 영화 전개 전부터 존 애덤스의 음악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음악이 단순 배경음이 아닌 촬영 현장에서 틀며 배우와 스탭이 모두 음악에 맞춰 연기·움직임을 조정했다. 애덤스가 음악 사용을 허락하지 않으면 대체할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 영화 완성본을 본 후, 애덤스는 "좋다, 써라"며 사용을 허락했다.
촬영감독 유레카 렉(Yorick Le Saux)과 함께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볼디니, 러시아 아방가르드 화가 말레비치 등의 회화를 분석했다. 디지털 색보정 없이 전통 필름 처리 방식으로 촬영을 고집했다. 특정 장면(노란 카펫 위, 엠마가 요리사에게 가는 장면)은 직접 나무로 만든 타워를 세워 카메라를 올리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변화의 전환점을 표현한 시각적 상징이다.
비스콘티, 앤토니오니, 시르크, 히치콕, 존 휴스턴 등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단순 모방이 아닌 영화 언어 자체에 대한 실험과 탐구를 시도했다. 루카는 영화는 절대 ‘일반화’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각각의 장면, 색, 리듬, 공간은 영화라는 고유한 언어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엠마는 ‘안전하지 않은 집’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물리적 불안이 아니라 정체성이 박탈된 채 머무르는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감독은 "그녀는 아직 삶에서 자신의 자리를 얻지 못했다. 그저 배역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표현했다.
엠마는 집안의 일하는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한다.
엠마가 집을 나가는 결정을 할 때, 그 집의 가정부는 트렁크를 꺼내어 옷을 챙겨넣고, 그녀가 나가자 작은 원형의 의자에 걸터앉아 폭풍 오열을 한다. 사랑하는 잃은 이의 눈물이다.
그럼에도, 함께 생활할 때 엠마와 가정부 사이에는 선이 있었다. 그들이 그어놓은 선은 아니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을 하고 없는 집. 엠마는 가정부에게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가정부는 익숙치 않다며 그 제안을 거절한다. 집주인과 일하는 이와는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없다.
그래서 엠마는 일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집에서 '혼자'라고 말한다.
마지막 동굴 장면에 대해, 루카는 "관객이 각자의 해석을 하길 바란다"며 열려 있는 결말로 남김.
그는 영화가 감정적으로 닫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더 깊은 층위로 이동하는 문이 되길 바랐다고 설명.
엠마가 남편과 침대에 누워볼 때 나오는 영화는 Jonathan Demme의 Philadelphia.
이는 “I am love. I am divine.”이라는 대사를 인용하며 영화 제목과 감정 주제를 오마주함했다.
"I am love. I am divine."
"나는 사랑이다. 나는 신성하다."
이 문장은 아주 짧지만, 철학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엄청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1) “I am love” — 나는 사랑이다.
이건 단순히 "사랑하고 있다"가 아니야.
그 사람은 사랑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는 뜻이다.
즉,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 자체가 사랑의 방식이다.”
이건 조건 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감정, 존재론적 사랑을 의미한다.
엠마라는 인물에게 이 문장은 자기 감정을 억눌러왔던 모든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는 선언이 된다.
2) “I am divine” — 나는 신성하다.
‘divine’은 신성하거나 거룩하다는 뜻이지.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신과 닮았다"는 말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어떤 외부의 규범이나 가치로부터 자유롭고 온전하다”는 선언이다.
이 말은 마치 성경 속 “I am that I am.(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처럼
존재의 자기 선언, 자기 신성화에 가깝다.
즉,
“나는 내가 선택한 사랑으로 존재하고,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고, 아무도 그것을 판단할 수 없다.”
3) 영화적 맥락에서 이 문장의 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이 장면을 오마주하면서 I Am Love의 제목으로까지 삼았다.
왜냐하면 이 문장이야말로 엠마라는 인물의 궁극적 선언이기 때문이다.
엠마는 처음엔 아내, 어머니, 상류층 여성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사랑을 통해, 상실을 통해, 억압된 자아를 깨뜨린 후에는
"나는 엠마가 아니다. 나는 사랑이다. 나는 존재 자체로서 신성하다." 라고 선언한다.
감정적인 번역으로 해보면...
"나는 사랑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누가 뭐라 하든
신성하고, 아름답고, 나답다."
루카는 영화 촬영 중 친구를 사고로 잃었고, 그에게 영화를 헌정했다.
제작비는 매우 낮았고, 장면마다 직접 제작팀이 손수 장비를 조립하며 완성했다.
런던에서의 일부 장면은 회사 매각과 같은 상징적 행위에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촬영되었다.
《I Am Love》가 실제로 2002년부터 아이디어가 시작돼 2009년에야 완성된 건 단순히 돈이 없어서도, 게을러서도 아니다. 이 영화는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와 틸다 스윈턴(Tilda Swinton)이 무려 11년에 걸쳐 함께 만들어낸 감정적 조각보 같은 작품이다.
1. 처음부터 '프로젝트'가 아니라 '삶'의 일부였다.
2002년 단편 영화 The Love Factory에서 루카와 틸다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대화하면서 시작된 이야기이다. 틸다가 “사랑은 감상적이지 않아, 사랑은 전복적이야”라고 말한 한 줄에서 영화 전체 세계관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이건 처음부터 계획된 시나리오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삶을 통해 숙성된 감정적 서사였다.
2. 각본이 3번 이상 재작성됨 — 매번 다른 작가들과 함께
처음 각본은 문학적으로 너무 풍부했지만 “영화답지 않다”고 느껴졌고,
두 번째 버전은 서사를 단순화했지만 깊이가 부족했고,
마지막으로 루카는 편집자와 함께 영화의 '리듬' 자체를 짜는 방식으로 구조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무려 3명의 작가와 7년 이상을 보냈어. 거의 고집스러운 예술적 완벽주의이다.
3. 틸다 스윈턴의 러시아어/이탈리아어 몰입 준비
틸다는 실제로 러시아어를 배우고, 이탈리아 억양까지 훈련해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단순한 배우가 아니라, 공동 창작자였다.
감독은 그녀와 함께 수없이 많은 대화를 통해 ‘엠마’라는 캐릭터를 조각하듯 만들어갔다.
4. 미장센과 미학적 완성도에 집착
루카는 회화적 구성을 위해 수많은 고전 화가들(볼디니, 말레비치 등)의 작품을 분석.
디지털 색보정을 거부하고, 전통 필름으로 조명·색감·카메라 동선을 실험하면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조율했다.
“도구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장면은 직접 만든다”는 고집이 있었어. 그래서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목재로 크레인 구조물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5. 존 애덤스의 음악을 ‘얻기 전’에 이미 음악에 맞춰 찍음
존 애덤스의 클래식 음악에 완전히 반해버린 루카는, 아직 허락도 받기 전에 현장에서 그 음악을 틀고 배우와 촬영팀 모두 그 리듬에 맞춰 연기·움직임을 맞추었다. 다행히 영화 완성 후 애덤스가 “좋다, 써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다. 이 영화 이전, 존 애덤스는 영화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 사용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만약 거절당했다면 영화 전체를 통째로 다시 편집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6. 독립영화로 제작… 자금과 시간 모두 부족
대형 스튜디오의 투자 없이 작은 예산, 거의 무보수로 작업했다. 고급스러운 상류층 세계를 그리면서도, 제작진은 금전적 빈곤 속에서 창의력으로 싸웠다.
감독 루카는 이렇게 말한다.
"We were broke. We still are."
이 영화는 10년 동안 촬영된 게 아니라,
10년 동안 살아내야만 만들 수 있었던 영화이다.
그건 마치 긴 편지, 오래된 연애, 잊히지 않는 상처 같다.
그래서 완성된 영화는 단순히 스토리의 전개가 아니라, 삶의 껍질을 벗기고 진심으로 만든 예술 작품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