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정당화하는 7가치 철학적 접근법
우리는 종종 묻는다.
“무엇이 진실인가?”
그 질문은 고대의 철학자들에게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화두다. 진실은 단 하나의 문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로 우리를 부른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때로는 확신으로, 때로는 혼란으로, 우리는 자신을 마주한다.
연역적 확실성 위에 지식을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흔들림 없는 기초 위에서 진리를 건축하려는 욕망.
그러나 그 길은 차갑고, 고독하다.
때로는 기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정합성.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 우리는 안다.
“아, 이게 전체의 그림이구나.”
진실은 그렇게, 맞물림 속에서 빛난다.
현미경과 망원경을 들고 세상 밖으로 나간 이들.
그들은 데이터와 가설이 서로를 비추는 자리에서 진실을 찾았다.
과학은 그렇게 태어났다.
예측과 실제가 겹쳐질 때,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칸트는 말한다. “사물 자체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다르다.”
데이터는 바깥에 있는가, 아니면 내 안의 지각 속에 있는가?
현상학은 그 경계에서 서성인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언제나, 세계의 그림자와 내면의 빛이 교차한 흔적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윌리엄 제임스와 퍼스는 답한다.
“작동하는 것. 유용한 것.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진리는 책상 위에서만 빛나는 개념이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피와 땀 속에서, 움직이는 진리가 있다.
푸코는 말했다.
“권력은 진실을 만든다.”
우리가 믿는 사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와 언어, 권력과 제도가 진실을 빚는다.
진실은 언제나 누가 말했는가와 함께 온다.
데이비드 흄은 “존재로부터 당위를 도출할 수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진리와 선, 아름다움을 함께 꿈꾼다.
칸트,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선과 진실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때로는 수학의 한 방정식에서도, 우리는 아름다움 속에 진리를 본다.
진리를 찾는 일곱 갈래의 길.
어느 길도 완전히 닫혀 있지 않고, 어느 길도 전부를 말하지 않는다.
진실은 단 하나의 빛이 아니라,
여러 갈래에서 흘러들어와 우리 삶을 비추는 다층의 빛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나의 진리는 어디에서 자라고 있는가?”
- 그레그 헨리케스 박사의 진실을 찾는 7가지 접근법 칼럼을 읽고
제임스 매디슨 대학,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