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중성적인 남성이 좋다.

포효하는 사자 같은 상남자를 회피하는 경향 - 왜 그러는 거야?

by stephanette

20대 초반, 소개팅과 같은 선을 봤다.

약속이 정해진 장소를 간다.

공원 옆의 통유리로 하얗게 빛나던 카페는

나의 미학적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


소개팅도 선도 인위적인 사적 만남을 극혐 한다.

여러 번의 부탁을 재차 거절하지 못해서 나갔었다.


강렬한 수컷과는 정 반대에 서 있을 것만 같은

검은 곱슬머리의 작은 레트리버 같은 사람이 말을 건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천정에서 내려오는 햇살과

다른 테이블이 닿지 않을 드넓은 공간

그리고, 약간의 초록색 식물들

그래서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 사람의 공간을 고르는 취향이 멋졌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렇다는 거다.


매우 단호하게 일찍 들어가야 한다는 나를 태워주겠다고 했었던 것 같다.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갔다. 즉흥적으로 지어낸 약속이다.

그리고는 다시 만나지 않았다.

레트리버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안정감이나 편안함의 가치는 모를 어릴 때였으니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좋은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좋지 않은 것을 회피하는 선택을 한다.

그래서, 남성성이 강한 사자 같이 포효하는 수컷을 회피해 왔다.

그리고 매우 오랫동안 일에 빠져서 살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갑자기 권위적이고 공격적이고 예측불가한 인물을 만나서 고통을 겪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스쳐 지나간 인연들의 공통점이라고 하자.


나는 왜 남성성이 강한 이들을 회피하고,

중성적 매력의 남자들과 어울렸었나.

여성성이 넘치는 남자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그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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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 서서 내면을 지켜보며 영혼의 지도를 그려가는 사람입니다. 글이라는 리추얼을 통해 말이 되지 못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며 길을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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