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류근의 시 '반가사유'를 내멋대로 바꿔 쓰다.

by stephanette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남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남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가지 않는 남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번호 바꾸지 않는 남자와

나이롱 커튼 같은 헝겊으로 옷 차려입은 남자와

현실도 미래도 종말도 아무런 희망 아닌 남자와

외항선 타고 밀항한 여자 따위 기다리지 않는 남자와

가끔은 목욕 바구니 들고 조조영화 보러 가는 남자와

비 오는 날 가면 문 닫아걸고

밤새 말없이 술 마셔 주는 남자와

취해도 울지 않는 남자와

왜냐고 묻지 않는 남자와

아,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저문 술집 남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사랑 같은 거 믿지 않는 남자와

그러나 꽃이 피면 꽃 피었다고

낮술 마시는 남자와

독하게 눈 맞아서 저물도록 몸 버려야지

돌아오지 말아야지


-류근의 시 '반가사유'를 내 멋대로 바꿔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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