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과정

칼 G 융의 연금술 단계를 읽고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자기를 만나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사건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미세하게 조용히 진행되어 온 균열이 한점에서 이어지는 순간에 가깝다. 겉으로는 멀쩡히 굴러가던 일상이 낯설어지고, 전에 먹히던 설명들이 더는 나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때가 있다. 대개 그때 우리는 공허, 지겨움, 이유 없는 피로 같은 이름으로 신호를 받는다. 그 신호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자”가 아니라, “지금의 방식으로는 더는 내가 나를 지탱할 수 없다”는 문장에 가깝다.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과정은 대체로 이렇게 흘러간다.


1. 예감: 균열의 소리를 듣는다

처음엔 큰 사건이 필요 없다. 사소한 문장이 걸리고, 별것 아닌 장면에서 마음이 이상하게 멈춘다. 반복해온 습관이 더는 나를 달래주지 못한다. 이때의 감정은 ‘실패’보다 ‘부적합’에 가깝다. 지금의 껍질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잘못된 사이즈의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 자기를 만나는 과정은 그 불편함을 무시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2. 붕괴: 오래된 설명이 무너진다

기존의 정체성을 지켜주던 말들이 힘을 잃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같은 설명이 틀어지면서 방어가 흔들린다. 여기서 흔히 찾아오는 것이 공허와 허탈, 그리고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내적 소음이다. 이 시기를 지나가려면 무엇을 더 붙여 넣는 대신, 비워내는 감각을 견뎌야 한다. 비워짐은 결핍이 아니라 다른 무게를 들이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3. 명명: 이름을 붙인다

흐릿한 감정에 언어를 대는 순간, 안개였던 것이 지도로 바뀐다. 두려움은 두려움, 분노는 분노, 수치는 수치라고 부른다. 이름 붙이기는 사건을 재구성하는 힘이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에서 “나에게 어떤 경험이 있다”로 주어가 교체된다. 경험과 존재를 분리할 때,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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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 서서 내면을 지켜보며 영혼의 지도를 그려가는 사람입니다. 글이라는 리추얼을 통해 말이 되지 못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며 길을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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