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적 인과
*사진: Unsplash의 Marc-Olivier Jodoin
인과응보는 저주가 아니다.
글을 읽었다. 출처는 아쉽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빌려준 돈, 바친 감정을 상대가 무시하고 배신하면
상대는 당신의 재앙을 대신 받고,
상대의 좋은 운, 복은 당신에게 옮겨진다.
이건 인과응보
저주가 아니다."
마음에 남는 문장이라 생각을 해보았다.
에너지 교환의 법칙
돈, 감정, 시간은 에너지의 다른 표현이다.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는 나와 뒤섞인다. 그래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라고 하는 것이다.
상대가 설령 배신을 하는 한이 있어도
나는 성향상 내 바운더리에 들어온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해준다.
오지랖이 넓다. 상대가 나의 에너지를 훔쳐가는 일이 발생해도 나의 이런 성향을 바꿀 생각은 없다.
내가 성실히 준 에너지를 상대가 배신하면,
그 에너지는 상대 내면에서 빚으로 남는다.
그 빚은 반드시 갚게 된다. 에너지는 어디로든 흘러가기 마련이다.
직접 갚지 않는다면, 재앙과 같은 삶의 사건을 통해 상쇄된다.
무의식에 쌓인 어둠은 어떻게든 뛰쳐나오기 마련이다.
카르마의 전이
불교와 힌두에서 말하는 까르마 사상에서는 타인의 선의를 배신하는 행위는 스스로 업을 쌓는 행위이다.
상대가 나를 해치면, 그 업은 상대에게 귀속되고,
내가 준 정성과 순수성은 나의 공덕으로 전환된다.
그래서 복이 옮겨간다는 표현이 가능해진다.
마법적 봉헌의 역전 효과
서양 오컬트 전통, 특히 헤르메스 주의, 카발라 등에서는
헌신과 희생은 우주적 장부에 기록된다고 본다.
내가 순수하게 준 헌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배신자가 파기하면 우주가 대신 나에게 보상한다.
배신자는 계약을 어겼으므로 보호는 사라지고,
재앙이 그 틈으로 들어오는 원리이다.
배신자의 운명을 설명하는 오컬트적 시나리오 5가지
인과응보는 아래 다섯가지 재앙으로 실현된다.
건강의 악화
인간 관계의 붕괴
금전적 손실
명예의 실추
영적인 고립
프로젝션과 심리적 부메랑
상대가 나를 무시하고 배신할 때, 그 죄책감과 불안, 수치심은 자기 무의식에 누적된다.
무의식은 언젠가 현실로 구현되어서 자기 파괴적 사건을 불러온다.
에너지 회수 이론
나는 더 이상 상대에게 에너지를 쓰지 않음으로써 내 에너지를 회수하고 성장에 사용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는 내 에너지를 잃고 자기 에너지도 탕진한다.
그리하여 삶은 무너진다.
성경 속 글귀
남의 눈물을 흘리게 하면 자기 집에 눈물이 들어온다는 잠언의 표현이 있다.
무릇 남에게 행한 대로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갈라디아서의 표현도 있다.
유교와 동양 사상
인과응보 즉, 원인과 결과는 반드시 대응한다.
군자는 은혜를 배신하지 않으므로 복이 지속되고,
소인은 은혜를 저버려 스스로 재앙을 불러온다.
민속신앙
한국 무속에서도 정성의 마음을 배반하면 귀신이 붙는다는 말이 있다.
분노와 배신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왜 그랬는지 모르거나 뭔가 강력한 외부의 힘에 의해 그렇게 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들이 있다. 그런 것을 귀신 붙는다고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의식 그 아래 깊이 묻힌 그 어떤 힘이 스스로를 부서버리는 언행을 하게 만드는 것이니 맞는 표현이기도 하다.
상대가 나를 배신하면 그 자리에 악한 기운이 들어가고,
나는 정성으로 보호를 받게 된다.
귀신에게 들린 이들은 황폐하고 어두운 그 악에 자신을 내맡긴다. 그게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 공허와 수치심 속에서 영원히 불탄다. 그러니,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 따위를 할 에너지는 아예 없다.
인과응보는 저주가 아니다.
우주의 에너지 보존 법칙이자
심리적 영적 시스템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인과응보는 미신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보편적인 에너지이나 심리학의 원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상위차원으로의 도약과
그 내면 차원에서 머무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아래 저차원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선을 행하고 나를 관찰하고 가치를 위한 삶을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