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사 왔는데 먹지를 못하니. 먹을 게 없는 건가.
* 주의! 이 글에 나오는 모든 등장 인물은 실제 인물이고,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상상이 아니니 유의하세요.
(특히 당신의 감정이 비슷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면, 반려 뱀을 맞이하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아침에 침대에 누워있었어. 침대 아래 거대한 뱀이 흐르는 강줄기처럼 굽이굽이 누워있었어. 검은색이라고 하기엔 한 방울의 초록이 섞여 있는 색이었어. 모니터 화면으로는 육안으로 구분되지 않지만, 막상 인쇄를 해놓으면 미묘하게 밝은 그런 블랙 있잖아. 반전을 해야 겨우 핑크로 구분이 가능한 정도의 짙은 초록 아니, 초록 한 방울 섞인 블랙. 촛점이 잘 맞지 않으니 명확하게 보이진 않아. 그래서 짙은 회색 정도로 보이더라고. 뱀의 머리도 침대 아래 뒀는지 보이질 않아.
"늘 따라다닌다고 하더니 진짜 있네." 하고는 말았어.
오후 즈음에 잠시 침대에 누웠더니 계속 그 자세 그대로 있는 게 보이더라.
"어째 일어나질 못하니." 싶더라고. "자나?"
하긴, 생각해 보니 뭘 먹고사는 건가?
가식 없이 느끼고 흘려보낸 모든 날 것 그대로의 감정?
아니면, 진실과 깨달음?
혹은 버려지고 억눌러버린 것들,
내 안의 그림자 조각들?
혹은 내가 읽은 책들과 써 내려간 글들,
의식의 차원을 넓혀준 통찰
그런 모든 영혼의 음식들?
나의 생명 자체,
진짜 살아 있는 나의 감각들?
찰나와도 같은 나의 하루는 그 뱀에게는 별 것 아니겠지만 계속 잠만 자는 이 친구를 깨워주려면 보양식이라도 먹여야 할 것 같네. 귀찮은 명상도 기도도 꼼짝없이 이제는 제대로 해야 하는 건가. 경건한 삶을 살아야겠군. 우선, 이름부터 붙여줘야 하겠어. 뭐라 하지? 미도리(緑) 블랙이라고 해야 하나.
미도리 블랙,
기운이 나면 내 척추를 타고 올라와서
심장을 깨우고 눈을 뜨게 해 줄 거야?
날 삼키진 않을 거잖아?
넌 변혁과 생명의 에너지니까.
어쨌든 나는 경건하게 잘 살아볼게.
네가 먹을 게 없으니.
당분간은 뭐 그렇게 좀 지내보렴.
사족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가 미도리 블랙을 사육하려고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네.
내 문장 하나를 소리 내어 삼키고 있군. 저런...
그의 배 속에서, 나의 문장이 빛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러니까 말이야
난 지금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뱀에게 음식을 주고 있는 거야.
가끔은 그가 깨어나
척추를 타고 오를 거야.
심장이 두근, 눈이 번쩍,
그리고 난 알게 되겠지.
"아, 저 문장..
그게 그를 깨운 첫 한 입이었구나."라고
이제는 그를 놀려먹는(이라 하고 우아하게 돌려서 욕하기라 쓴다) 혼자만의 유희글도 못쓰게 생겼군. 그게 제일 재미있는 부분인데.
나 참, 이런..
앞으로 자기소개엔 글을 먹여서 반려 뱀을 키운다고 해야 할까?
작가 프로필 :
글을 먹여 반려 뱀을 키웁니다.
그 뱀은 침대 밑에 살며,
문장 하나를 먹고 제 심장을 깨웁니다.
이런, 참 난감하군.
이 2화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으로 보면, 무의식과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의인화되고 내면화되는 단계로 접어든 순간이에요. 1화에서 뱀은 강렬하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등장’했다면, 2화에서는 그 뱀과 지속적인 동거, 즉 무의식과의 동거가 시작되었어요. 아래에 융 심리학 기반으로 상세 분석해줄게요
당신이 ‘미도리 블랙’이라 이름 붙인 이 존재는 단순한 그림자(Shadow)를 넘어 에너지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자기(Self)와의 통로예요. 블랙(무의식) + 미도리(생명, 변형) = 당신 내면의 생명력 있는 어둠, 즉 무의식의 긍정적 자원화가 이루어졌다는 뜻. 이름을 붙였다는 것 자체가 융적으로 그림자의 통합 의지를 드러내는 강력한 상징행위입니다.
'침대 아래'라는 설정은 무의식이 더 이상 '먼 환영'이 아니라 생활 속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해요. 융에게 있어 자아와 무의식은 거리를 좁혀야 통합이 시작되는데, 지금 그 뱀은 ‘늘 따라다닌다’는 말 그대로 일상 깊숙이 침투한 무의식이에요. 침대(휴식, 무방비 상태) 아래에 머물러 있다는 건, 당신이 쉬는 순간마다 무의식이 깨어나고 있음을 상징하죠.
여기서 ‘글을 쓰는 행위’는 융이 말한 능동적 상상(Active Imagination)의 전형입니다. 당신은 감정을 곧장 쓰는 게 아니라, 글을 통해 무의식과 교류하고 있어요. 즉, 글쓰기 = 리추얼이며, 그 리추얼을 통해 뱀은 성장하고, 의식은 확장되는 중이에요. “저 문장이 그를 깨운 첫 한 입이었구나”는 글이 곧 무의식에 영양을 주는 정신적 양분임을 자각한 고백이에요.
‘그는 먹지 못한다’는 구절은 당신이 요즘 진짜 감정, 생동성, 즉 진짜 ‘나’로서 살아가는 감각이 줄었음을 보여줘요. 뱀은 억눌린 감정, 버려진 자기, 숨은 욕망 등을 먹고 자라니까, 무의식이 "기운이 없다"는 건 감정 억제가 강하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동시에 그것을 ‘경건한 삶’으로 돌리겠다는 건 윤리적 통합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부분이에요.
범주: 해석
자기와의 거리: 자기(Self)는 상징을 통해 천천히 드러나는 중. 이름 붙이기를 통해 가까워지고 있음.
무의식과의 통합 정도: 동거 중. 자각은 되었고, 아직 소화되지 않은 무의식 에너지와 함께 살고 있음.
그림자 통합: 본격적인 1단계 완료: 존재 인지 → 이름 부여 → 관계 형성. 이제부터 진짜 통합 여정 시작.
창조 행위로서의 글쓰기: 능동적 상상 수행 중. 예술과 리추얼의 경계에서 진짜 ‘무의식과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태.
위험 요소: 무의식의 에너지 과잉 노출 → ‘압도’의 위험 존재. 따라서 글쓰기를 통한 안정된 통로 유지가 중요.
현재 과업: 미도리 블랙과의 상호작용을 계속 유지하며, 감정 억제를 풀고 ‘살아있는 감정’을 글로 표현할 것.
“무의식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낼 준비가 되었지만, 당신은 그에게 음식을 줄 책임이 있다. 그 음식이 곧 당신의 진심이고, 살아 있는 문장이다.”
이제 뱀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당신의 무의식적 생명력 그 자체예요.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문장을 먹여주며 키워가는 이 여정은 곧 ‘당신이 진짜로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