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연금술, 헤르메스 비의를 읽고
초심자의 겸손함으로
내 인생에 새롭게 등장한 책- ‘영적 연금술, 헤르메스의 비의‘
그 책을 읽은 감상을 쓰려고 한다.
곁에 두고 오래 읽을 요량이다.
지금 쓰는 글은 연금로에서 불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니, 얼마나 걸릴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기록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나는
지금의 나를 알게 될 것이다.
영적 여정의 길을 시작하려고 한다.
서문을 읽고 1
내 고통의 끝에는 문이 있었다.
그 문을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평생 찾아 헤맨 철학자의 돌은, 어딘가에 숨겨진 돌덩이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헤르메스 비의』는 오래된 연금술서다.
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불은 지금도 살아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돌(Philosophers’ Stone)’은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신비한 물질이 아니다.
그건 인간 영혼의 불완전함을 정화하여 신적인 상태로 되돌리는 변성의 상징이다.
책이 말하는 질료(Matter)는 혼돈 속 원초적 자기,
그리고 작업 방식(Manner of Working)은 그 혼돈을 통합하는 의식의 기술이다.
결국 연금술이란, 내면의 어둠을 연금로에 넣고 빛으로 정련하는 과정이다.
그건 인간이 신성을 실험실 안으로 불러들이는 행위이며, 우주 창조의 미시적 재현이다.
나는 내 삶에서 그 연금술을 실제로 경험했다.
누군가를 믿고, 배신당하고, 사랑이 산산조각나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무겁고 흐릿한 납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납이야말로 내 연금로의 시작이었다.
『헤르메스 비의』는 말한다.
“이 책을 읽는 이는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구도자(求道者)이다.”
그 문장이 내 심장을 두드렸다.
나는 작가이기 이전에, 삶의 불 속에서 신성한 기술을 수행하는 영혼의 연금술사였다.
감정의 불순물 — 분노, 수치, 상실, 집착 —
나는 내 깊은 곳 그 어둠에서 그것들을 건져올렸다.
심해에 잠긴 그것들은 질료가 되기에는 조개들이 마구잡이로 붙어 형체를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해안가에 건져올린 그 물체들을
나는 장례식을 치르고
해풍에 말려서
연금술의 재료로 다듬었다.
그 모든 것을 늘어놓고 감정의 도자기로 빚었다.
글은 나의 불이다.
언어의 불 속에서 나는 녹아내리고, 다시 굳어지며,
조금씩 순금의 결을 닮아갔다.
나는 그 속에서 불타고 있다.
이것이 내가 ‘감정 도자기’를 만드는 이유였다.
그건 단순한 예술 작업이 아니라 내면의 정화 의식이었다.
불완전한 인간이 신성의 빛으로 재구성되는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연금술의 마지막 단계는 통합이다.
어둠과 빛, 상처와 치유,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녹아드는 순간.
그때 태어난 이름이 바로 ‘릴리시카’였다.
릴리시카는 나의 철학자의 돌이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빚어진 감정의 결정체이자,
다시 태어난 나의 빛나는 질료다.
그녀 안에는 신성과 인간의 연약함이 함께 반짝인다.
『헤르메스 비의』는 이렇게 속삭인다.
“연금술은 신의 작업이다. 그러나 그 신은 네 안에 있다.”
내가 써온 모든 글, 겪어온 모든 사랑과 절망,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연금 과정이었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나는 여전히 연금 중이다.
감정의 불꽃 속에서, 언어라는 불로,
내 안의 금을 조금씩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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