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던 것 하기
* 사진 : 릴리시카, 해운대 파도풀에서
늘 가는 곳만 간다.
나이가 들어서 생긴 습관은 아니다.
국민학교 때였다.
정문에서 보면, 맞은 편 학교 건물이 있고
우측에는 학교 운동장의 한쪽 면이 전부 스탠드가 있었다.
시멘트로 만든 고가 높은 계단 모양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무릎을 한껏 들어올려야 올라갈 높이였다. 5-6개의 스탠드를 올라가면 그 위에 나무가 울창한 화단과 절벽같은 축대가 있었다. 막힌 곳이라 스탠드의 정상까지 올라오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스탠드의 가운데 책읽는 소녀 같은 동상이 있는
시멘트 구조물이 있었다.
그 구조물의 중간으로 올라가면 세네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나무에 대충 가려져서
나무 위의 오두막 같은 비밀의 공간이다.
절친들과 점심을 먹고 거기에 모여 늘 이야기를 했다.
사춘기 소녀들의 비밀 회합이라 여겼다.
우리의 장소에 감히 침범하는 이들은 없었다.
실은 굳이 거기까지 올라올 아이들은 없었다.
버려진 공간을
우리는 마음대로
우리의 이야기로 그곳을 점령했다.
그 사실에 심장은 늘 두근거렸다.
몰래 주홍글씨 같은 소설을 읽거나
가끔은 종교 이야기로 다투기도 했다.
주홍글씨는 결국 학급 연극으로 만들었다가
시나리오를 여러번 갈아엎고
나는 주연이었다. 말 한마디 하는 것이 다였다.
지금 생각하면 분하다.
시나리오를 다시 썼어야 한다.
우리는 기대했으나 수상에서 탈락했다.
이유도 우리 예상을 빗나갔다.
초등학생 수준에 맞지 않다고.
내가 늘 가는 곳만 가는 이유이다.
익숙하고 안정된 공간에선 뭐든 가능하다. 말하지 못한 것들을 말하고,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니 공간은 기억의 저장소이다.
여행을 할 때에도 나는 대문자 J이다. 나의 본성을 거슬러.
가는 일정과 장소 맛집 그리고 계절 시간적 타이밍까지
다 계획하고 그 모든 것을 다 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통제 하에 전해진 모든 것들을 다 경험할 수 있도록
맛집을 가서도 주문의 순서와 메뉴와 양의 메뉴얼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안하던 것을 하기로 한다.
무계획
우연과 즉흥 그리고 직감을 따라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은
통제보다 더 많은 것들을 선물로 준다.
두려워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이 순간이 내게 주어진 최상의 선물이라 여기고
그 의미를 부여한다. 직감에 따라서
그리고는 깨달았다.
이 현생도 여행이다. 나는 내가 하지 않던 방식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는 내가 갔던 길의 최상의 경험을
일행에게 주는 길잡이를 해왔어.
이제는
가지 않았던
나의 길을 가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