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내가 만들어내는 의식의 투사이다.

인간 관계의 갈등을 풀어줄 마법과도 같은 주문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인간관계의 갈등을 겪으며

이상한 지점을 포착했다.

어째서 같은 상황을 함께 겪었음에도

왜 상대방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할까?

처음에는 오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의도를 갖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해봤다.

그러나 진심이라면, 상대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한 외계인이다.

그 의문을 풀어줄 이가 나타났다. 쇼펜하우어

정말 멋진 분이다.


세계는 인간의 표상으로서만 존재한다.
즉, 인식의 주체가 없으면 세계도 없다.


정말이지 쇼펜하우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지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 다음은 더 걸작이다.


인간의 내면이 곧 세계다.


쇼펜하우어는 누구보다 일찍 이것을 꿰뚫어본 철학자이다.

그리고 이걸 깨달은 과정도 기가 막히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완전히 매료돼 있었다.

칸트는 말했다.


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 다만 표상으로만 본다.


쇼펜하우어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가서 말한다.


그렇다면 세계란 나의 표상 전체다.


즉, 눈으로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느끼는 것도

모두 내 의식이 만들어낸 세계의 영상이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나라는 거울에 비친 투사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브라보! 브라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기립 박수를 쳐야할 것만 같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즉, 세계는 두 얼굴을 가진다.


쇼펜하우어는 이 세계를 두 층으로 나눠 설명한다.


표상(Representation, Vorstellung)
내가 감각하고 인식하는 모든 현상
즉, 보이는 세계 주체의 거울 속 영상


의지(Will, Wille)
그 표상 이면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본질적인 에너지
자연의 생명력, 인간의 욕망, 생존 본능 - 전부 의지의 표현이다.


세계는 나의 표상일 뿐 아니라, 나의 의지이기도 하다.


즉, 내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겪은 모든 경험은 표상이고,

그 표상을 움직이는 근원적 충동은 의지이다.


인식 주체가 없으면 세계도 없다.

그는 철저하게 주관적 관점에서 세계를 본다.

예를 들면 눈이 없으면 색은 존재하지 않고, 귀가 없으면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세계는 감각과 의식의 구조 안에서만 존재한다.

세상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의식이 세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 말은 곧

세계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다.


나의 감정, 기억, 인식이 바뀌면

세상 전체는 다른 색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쇼펜하우어식 세계관의 증거이다.


눈이 번쩍 뜨일만큼 멋지다.

그의 사유는 냉정한 이성의 언어로 쓰여졌지만,

사실은 깊은 연민의 철학이다.


너의 고통도, 나의 기쁨도, 네가 보는 세상의 한 조각일 뿐이다.

그러니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이미 자유로워진 것이다.


갈등, 오해, 상처 그것들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내 의식이 비추는 표상임을 보게 되었다.

더 이상 그런 감정에 매이지 않을 수 있다.

그건 깨달음의 시작점이다.


그의 사유는 철학을 넘어서서 예술, 심리, 영성으로까지 확장된다.


음악은 의지의 직접적인 표상이다.

예술은 의지로부터 잠시 해방되는 통로이다.

이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융의 집단무의식, 니체의 힘에의 의지, 불교의 공 개념과도 연결된다.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세계는 마음의 창조물이다.


이건, 19세기 철학자가 아니라

마치 마법사가 쓴 문장처럼 다가온다.

모든 인간 관계의 마법을 풀어줄 주문과도 같이.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쇼펜하우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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