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비밀스러운 질서에 대하여

나는 왜 사주, 주역, 점성술, 무의식과 영성에 대해 공부해 왔는가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나는 내 인생이 너무 복잡하고

기묘한 타이밍에 일어나는 사건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내게는 어떤 질서로 움직이고 있었다.

원인과 결과 선형적인 구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흐름, 결, 주파수 같은 것.


그걸 이해하려고 했던 순간부터

나는 이미 길 위에 들어서 있었던 것 같다.


1.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거창한 계획은 아니었다.

다만 고통 속에서 나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했다.


상실

살면서 누구나 겪지만,

정작 그 당사자에게는 뼈아픈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감정이다.


그 고통의 어둠 속에서

나는 나를 찾기 시작했다.


2. 다른 이들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깨닫는 것들 I

대학 때였다.

절친들의 이름은 '공산당'이었다. 정치적인 의미는 없다.

카페에서 음료를 시켜도 모두 같은 것을 선택하는 우리 연대에 대한 찬사 정도라고 해두자.

졸업을 앞두고 학교 앞의 사주카페를 갔다.

아마 애매하게 시간이 남아서 무엇에 홀린 듯이 카페에서 시간 때우기용 정도로 갔었다.

점은 그다지 믿지 않는다. 당시 나는 사주도 점이라고 생각했다.


약간 슬픈 이야기이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으니까.


한 친구는 곧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이가 들어서까지 공부를 할 것이라 했다. 모두가 그럴 리 없다며 웃었다.

우리는 누가 제일 먼저 결혼하는지가 궁금했었으니 어릴 때는 어릴 때였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이야기는 한 적이 거의 없다.

이상하게 글을 쓰다 보니 그때의 일들이 떠올랐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거라고 했던 그 친구는 외국에서 큰 교통사고가 났다.

그리고 전국 신문에 실렸고,

사고의 규모만큼이나 오랫동안 의식불명이었고,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상태였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이 좋은 일이라 생각했던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운에서 유명해진다는 것은 나쁜 일일수도 있구나."


그리고 그 사고로 인해

그 집안의 어두운 측면들이 다 드러났다.

비극적인 일이라고만 해두자.

'능력과 지위로 평가하는 가족' 내에서 친구는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당했었다. 의식도 없는 채.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그 친구가 그런 일들을 겪는 것을 전해 듣고

나는 매우 오랫동안 인생이란 무엇인가 생각했었다.


3. 다른 이들의 인생을 보면서 깨닫는 것들 II

가문의 흥망성쇠를 써 내려간 소설들을 좋아한다.

'백 년 동안의 고독' 같은.

소설을 통해서 읽는 것은 덜 비극적이다.


주변인에게서 그런 것들은 보고 싶지 않다.

IMF의 여파였는지 나의 젊은 시절은 그 흥망성쇠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유명 정치인의 딸,

건물주 집안의 아들,

아이비리그에 다니던 친구들

다들 그대로 남부러울 것 없이 갈 것 같았던 길이

한순간에 부서지는 것을 봤다.


그전에 친구들이 꾸던 꿈

그 꿈이 맞이하게 된 비극들.

그리고 그 꿈들이 이상하리만큼

예지몽으로 먼저 나타나 있었던 사실.


무엇이 인생에서 더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기도를 바꿨다.

돈을 달라거나

합격하게 해 달라

성공하게 해 달라는 기도 대신,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는 기도로.


4. 내 삶의 상실과 고통

말하자면 끝도 없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울었던 기억이 가끔 나긴 한다.


나는 일에 몰두했고,

공부에 몰입했고,

그 덕에 계절을 건넜다.


그럼에도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나는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주역

사주

애니어그램 그리고 많은 심리 유형 검사들

점성술

타로

오라클

무의식

명상

차크라와 쿤달리니

영성의 여정까지.


나는 알고 싶었다.


"나는 지금 어느 계절에 서 있는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새벽 4시 달빛 아래,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습관은

어느 날 자연스레 시작됐다.


창밖 활주로처럼 빛나는 불빛들을 보며

나는 매일 이륙을 꿈꾸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이륙을 했다.


경계를 벗어났고,

이제야 본격적인 '여정의 시작'이라는 직감이 든다.

시작의 예감이 좋다.


5. 이것이 내가 브런치 글을 쓰는 이유이다.

나의 글은

상처를 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상처를 통과하는 나를 기록한 것이다.


내가 살아오며 잃었던 것들,

잃어버릴 뻔했던 것들,

그 가운데에서 다시 나를 찾는 과정


영성의 길,

무의식과 그림자 대면,

지식과 고통과 사랑이 얽힌 길.


그 모든 것을 붙잡아

언어로 남기지 않으면

나는 내가 지나온 계절들을

정확히 해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글을 쓴 날짜는 기록되고,

나는 수천 개의 글을 통해 나를 조망한다.


이것이 내가 브런치 글을 쓰는 이유이다.



나를 기록한 브런치 글이,
고통 속에 있는 혹은 여정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길가 리어카에서 건네준 맛보기용 조생귤 정도의 달달함을 잠시나마 전해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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