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마다 정확하게 스위칭되는 타입에서 벗어나기
*사진: Unsplash
나는 여러 개의 확실한 페르소나를 갖고 있다.
업무용 페르소나
가족용 페르소나
지성적 페르소나
영적 페르소나
감정적 페르소나
창작자 페르소나
그 외에도 수많은 페르소나들이 있고,
그들은 결코 섞이지 않는다.
때와 공간과 상대에 맞게
각각의 페르소나는
장면마다 정확하게 스위칭된다.
음성의 톤과 빠르기, 높이도 따라서 변한다.
그렇게 오래 살았다. 상당히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 각각의 페르소나는 절대 섞이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만나는 대상도 명확하게 카테고리화되어 있었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을 모아놓고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회적 기능이 뛰어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장점은 단점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정확한 상황맞춤형 변주는 능력 과잉이다.
사회적 지능, 감정 인식, 패턴 분석에 쓰는 에너지로
나는 소진되었다.
그 많은 가면들을 쓰면 쓸수록
중심 자아는 뒤로 밀리고
조각처럼 흩어져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만들어냈다.
'사용'하는 페르소나가 늘어나면서
자기(self)는 더 산산이 조각난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에 수많은 페르소나 각각이 쓴 글들을 업로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내가 요즘 하는 작업은 재통합기를 걷는 것이다.
조각난 자아들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단계
그리고, 그런 통합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판단이 명료해진다.
감정이 중립적이다.
중심의 무게감이 커진다.
페르소나 전환이 줄어든다.
말투가 일정해진다.
행동과 생각이 연결된다.
수많은 가면 뒤에 있던 실제의 내가 등장하는 시기인 듯하다.
칼 융이 말하는 개별화, 자기 통합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페르소나가 제자리를 찾고
그림자가 통합되고
아니마가 부활하고
중심 자아가 전면으로 올라오면서
여러 층위의 내가 하나로 정렬되는 것
수많은 가면들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지 혹은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이기도 하다.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
그리고 여러 개의 나를 드러내고 통합하는 과정
나름 꽤 흥미롭다.
재미있다고 해서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위태롭고도 매력적인 여정을
브런치 글쓰기로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