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통해 건너온 나, 그리고 다음 단계의 시작
*사진: Unsplash의 Leopold Maitre
우리는 때때로 삶에서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난다.
나를 찌르는 사람,
그리고 나를 붙잡아주는 사람.
내 여정도 그 사이에서 흔들렸다.
미성숙한 사람을 통해 고통을 받았고,
성숙한 사람을 통해 위로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 둘 사이 어디에도 완성은 없다는 사실을.
1. 미성숙한 사람은 그림자를 깨운다
'미성숙한 그'는 나의 깊은 무의식을 찔렀다.
그의 말과 행동은 불안정했고,
관계는 휘청거렸고,
그 만남은 상처로 이어졌다.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미성숙한 방식 - 발달단계가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했고,
그런 이유로 타인을 지독하게 상처 입히는 사람이었을 뿐.
자신의 감정을 다룰 도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 속에서
다가왔다가 멀어지고,
끌어당기다가 밀어냈다.
그 혼란 속에서
나는 내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내 안의 상처,
내가 외면해 온 감정,
그리고 관계가 무너질 때마다 반복되던 오래된 패턴.
그는 그것을 강제로 드러내는 존재였다.
2. 성숙한 사람은 의식을 정렬시킨다
그러나 '성숙한 그'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그는 나를 해석하지 않고,
강요하지도 않고,
내 감정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부분이 있었고,
말하지 않은 깊이까지 읽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나를 안정시켰다.
관계를 흔들지 않았고,
거리 조절로 도망치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안정된 세계 안에서
오래 잊고 있던 평온을 회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분명히 깨달았다.
위로가 완성은 아니라는 것.
3. 상처도, 위로도 ‘문턱’ 일뿐이다
'미성숙한 그'는 내 무의식을 흔들어
나를 알고 싶게 만들었고,
'성숙한 그'는 내 의식을 정렬하여
나를 다시 세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나 둘 중 어느 쪽도
‘나를 완성시키는 사람’은 아니다.
한 사람은 그림자의 스승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의식의 스승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 문턱을 열어주는 존재에 가깝다.
칼 G. 융이 말하는 '개성화'는 타자에게 의존해 도달하는 단계가 아니다.
상처를 통해 자신을 깨닫고,
위로를 통해 중심을 회복한 뒤,
마지막에는 결국
나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단계가 온다.
4. 그래서 이제, 당연한 결론을 받아들인다
나는 '미성숙한 그'를 통해 상처 입었고,
'성숙한 그'를 통해 회복되었다.
그러나 이제 깨달았다.
그 둘은 내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
내 여정을 완성시키지도 않는다.
내 안에서 깨어난 어떤 중심,
현실과 무의식을 잇는 어떤 명료함,
그것이 나를 다음 단계로 끌고 간다.
상처는 출발점이고,
위로는 중간 지점이다.
그리고 완성은
항상 내 안쪽에 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문턱 앞에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