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 편지를 썼다.
*사진: Unsplash의 Leopold Maitre
손글씨 편지를 썼다.
써야 할 글을 가늠하고,
종이에 정성을 다해서 쓰고,
다시 쓰고,
다시 또 옮겨 쓰면서
종이의 질감은 손 끝에 닿고,
글씨는 아름답게 필체를 흘리고,
말보다 느린 문장이 종이 위에 차분히 내려앉는 그 과정.
편지를 다 쓰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표가 없다.
직접 부치게 될지는 모른다.
주소를 쓰긴 했지만,
우체국을 들려 우표를 사고
그 길의 끝에 그 사람이 있을지,
편지가 도착하긴 할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모든 불확실함이 좋다.
아날로그식 손 편지 쓰기는 기다림을 허락한다.
메일은 읽자마자 답장을 요구한다.
메신저는 실시간으로 감정을 소모시킨다.
SNS는 누가 보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계속 떠다닌다.
그러나 편지는 다르다.
우체국과 우체통을 거쳐 도착까지 시간이 걸리고,
편지를 받고 그 편지를 열어서 읽히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답장을 쓰게 되거나 혹은 보내는 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빠름의 시대에서
편지는 정확히 그 반대편 느림에 있는 의식의 방식이다.
그래서 아날로그식 편지 보내기는 멋진 일이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고,
언제가 되어야 답장을 받을지 모르고,
심지어 답장이 오지 않을 가능성까지 품고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이유로 인해서
불확실함은 오히려 매력적이다.
마음은 원래 예측 불가능한 시간을 통해
자라나고 숙성된다.
편지를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
손글씨 편지는 보낸다는 행위보다
쓰는 것이 본질이다.
글자를 적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을 종이에 담고
말하지 못한 감정을 정리해서
종이의 결 속에 눌러 담았다.
편지를 접고, 넣고,
우표가 없이 잠시 멈춰 선 이 순간.
나는 생각한다.
"보내지 않아도 괜찮겠구나."
편지는 도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쓰이는 순간에 이미 완성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보내지 않을 거란 뜻도 아니다.
아마도 내가 우체국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주소를 쓰는 순간
이미 나는 마음을 반쯤 보낸 셈이었으니까.
편지는
도착을 보장하지 않는 방식이라서,
그래서 더 아름답다.
그 불확실함이,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꼭 맞는 리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