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왠지 모를 슬픔이 나에게 왔다.
*사진: Unsplash
슬픔이 아니라
인연에 대하여라는 제목이 더 걸맞을 것도 같다.
삶의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와 힘들을 다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인식의 차원은 전체 중의 5%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무의식을 통합하지 않는다면,
그 5%의 의식 차원도 제대로 다룰 수 없다.
결국은 95%의 중력에 끌려갈 테니까.
이것이 내가 무의식의 언어를 배우고,
나의 그림자를 대면하고,
나의 아니마/아니무스와 대화하고,
그 모든 것들을 통합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홍익인간이라 하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는 그 결과는 모른다. 다만 지향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작업들도 이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현생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인연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연이든 악연이든.
가끔은 참 아쉬운 이들이 있다.
늘 곁에서 성장을 서로 돌봐주고 싶지만
보내줘야 하는 이들,
그리고 두고 떠나야 하는 이들.
그런 것이 슬픔이다.
만나는 이들과의 관계와 의미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그 통찰을 가진 뒤에는
그 관계와 의미에 맞는 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투사나 다른 잡다한 것들에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자아는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나와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 그리고 그 둘을 관찰하는 나
그 아래 숨겨진 자기(self)
포효하듯 분노하는 아니무스와 상처받고 죽어버린 시체 아니마
그 모든 것들을 살려내고 균형을 잡고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은
완성된 삶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그리고 나면, 그제야 제대로
삶의 가장 가치 있는 일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각자의 길을 얼마나 힘겹게 걷고 있는지를 깨달아서이다.
조금 늦거나 어긋나더라도 그것이 그렇게까지 슬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순간
바로 이 순간
잠시 잠깐의 스쳐 지나감이 기적이라 생각한다.
서로가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멋진.
마치 기념이라도 하듯이
첫눈이다.
살아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