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제국

드워킨이 말한 ‘해석 공동체로서의 법’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의 『Law’s Empire』는 현대 법철학에서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정교한 개혁을 시도한 저작이다. 그는 법을 국가가 선포하는 규칙의 집합으로 보았던 법실증주의도, 법을 초월적 도덕의 반영이라고 여긴 자연법론도 모두 불충분하다고 판단하면서, 법을 ‘해석의 행위’로 재정의한다. 이 책에서 드워킨은 “법은 공동체의 도덕적 자아를 구성하는 해석의 서사”라는 전제를 세우고, 그 위에서 판례·입법·헌법을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읽어낸다. 그는 법을 정태적 질서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어떤 책임을 지는 것이 정당한가를 끊임없이 갱신하는 해석 공동체(interpretive community)의 산물로 본다.


법의 개념을 둘러싼 드워킨의 비판은 법실증주의자 H. L. A. Hart의 논지에서 시작된다. 하트는 법을 ‘규칙(legal rules)’과 ‘재량(discretion)’의 체계로 보았고, 그 틀에서 판사의 역할은 규칙이 명확한 경우 규칙을 적용하고, 규칙이 부족한 경우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넣는 ‘입법적 보완’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드워킨은 이러한 시각을 법의 본질에 대한 오해라고 보았다. 그는 판사가 ‘재량’으로 규범을 창조한다는 가정 자체가 법적 판단의 도덕적 구조를 지워버린다고 지적한다. 판사가 내리는 결정에는 단순한 규칙 적용 이상의 것이 있으며, 그 결정들은 공동체의 지나온 역사와 문화, 누적된 가치 판단 속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원칙(principles)에 의해 안내된다는 것이다. 즉, 판사는 새로운 법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법적 원칙을 가장 일관된 방식으로 해석해내는 존재로 이해된다.


그가 말한 가장 유명한 개념은 바로 ‘법적 정합성(law as integrity)’이다. 드워킨은 판결을 하나의 ‘문학적 공동체’의 텍스트 해석처럼 본다. 특정 사건을 판단할 때, 판사는 기존 판례—혹은 그 판례들이 암묵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가치 질서—와의 일관성을 끊임없이 검토해야 한다. 하나의 판결은 공동체의 서사에 새로운 장을 덧붙이는 행위이며, 그 장은 앞선 문맥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법은 이런 의미에서 ‘이야기처럼 읽히는 질서’이며, 해석적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시도 자체가 법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드워킨에게 법적 해석은 단순한 의미 분석이 아니라 규범적 판단이다. 해석은 언제나 가치를 포함하며, ‘무엇이 공동체에 최선의 정당성을 부여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원칙(principles)’과 ‘정책(policy)’의 구분이다. 정책은 공동체의 효용, 공익, 경제적 이득처럼 ‘목적 지향적 가치’를 말한다. 반면 원칙은 개인의 권리, 절차적 정의, 공정성처럼 ‘도덕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가치’다. 드워킨은 판사는 정책이 아니라 원칙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책은 다수의 편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경향이 있고, 이는 현대 헌정주의가 보호하려는 기본권 체계와 충돌한다. 반대로 원칙은 개인의 권리를 ‘트럼프 카드(trumps)’처럼 위치시켜 공동체적 목적보다 앞세운다. 드워킨이 말한 유명한 명제, “권리는 정책을 이긴다(Rights as trumps)”는 바로 이 구조를 요약한 것이다.


이러한 논지에서 출발하면, 드워킨에게 ‘어려운 사건(hard cases)’이란 법에 답이 없는 사건이 아니라, 여러 원칙들이 긴장하는 자리다. 법실증주의는 이런 경우 판사가 ‘재량’으로 규칙을 새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지만, 드워킨은 그 판단조차 이미 공동체가 암묵적으로 수용해온 도덕적 원칙들 속에서 최선의 정합성을 가진 해석을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본다. 즉, 법은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판사의 임무는 그것을 해석적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여기서 드워킨의 법철학은 법의 불확실성 속에서 도덕의 자리를 비워두는 대신, 그 자리를 정교하게 체계화한다.


『Law’s Empire』의 핵심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환원된다. “법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드워킨은 법을 인간의 도덕적 책임이 정치적 제도 속에서 구현되는 방식으로 본다. 그는 법이 단지 규율이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윤리적 정체성이라고 주장한다. 공동체는 ‘우리는 어떤 종류의 사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속적으로 답해야 하며, 판결은 그 대답의 실천적 형태이다. 따라서 드워킨에게 법은 단순히 권력을 정당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공동체의 양심과 책임을 제도적으로 번역하는 도덕적 프로젝트다.


그의 결론은 단호하다.

법은 규칙의 집합이 아니다.

법은 도덕적 해석의 체계이며,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지는 책임의 구조다.


‘법의 제국(Empire)’이란 규칙의 제국이 아니라, 책임과 정당화의 제국이다.

그 속에서 판사는 해석자이며, 법은 공동체의 자아가 쓰는 서사다.


『Law’s Empire』는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법을 규칙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책임으로 볼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법학을 넘어, 정의를 사유하는 모든 인간에게 던지는 근본적 도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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