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나는 무엇을 계속 찾아 헤매는 걸까?
*사진: Unsplash의 Katie Burkhart
꿈을 꾸었다.
영화 세트장이다.
거리는 7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지었음직한 옅은 베이지의 단층 건물들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다.
흙을 다져서 만든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드리우고 있다.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배우들이 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을 지나쳤다. 말을 걸기에는 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건물 끝에 연청록색의 공중전화를 하던 이가 전화를 끊고
돌아서서 담배를 꺼내든다. 그리고 불을 붙인다.
이병헌이다.
혼자 서 있는 그를 보고서 이야기를 건네도 되겠다 싶었다.
흡연자들은 모르는 이와도 대화를 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다가갔다. 그러나, 담배에는 불이 붙지 않는다.
대화는 시작하지 못한다.
말이 되지 못한 나의 말은 몸 안에서 나가지 못한다.
답답하다.
촬영의 시작이 늘어지고
기다리던 배우들은 어느샌가 곁에 모여들어 놀기 시작한다.
마치 파티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정종 병을 어디선가 꺼내와서 공중에 추켜올리고는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일본의 어느 축제에서 본 것처럼 길거리에 행진을 하고, 잔에 정종들을 따르고
다시 서대한 정종 병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공중에서 춤을 춘다.
나는 그 무리 구석에 끼여 앉았다.
목조 건물의 작은 일식 주점 구석이다.
옆에는 작고 가냘픈 여자가 있다. 사랑하는 남자를 잃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중이라고 한다.
이어질 방법이 없는 금기된 사랑이라며, 그를 위해 주점을 운영하겠다고.
그러나, 그녀는 직접 그를 대면할 생각은 없다.
대신 나에게 그를 만나서 이런 말들을 전해달라며 매우 세심하게 일러둔다.
종달새처럼 여린 그녀를 보고 나는 문득 애잔해졌다. 그래서 주점을 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버스를 탔다.
꿈속의 나는 늘 가는 곳이 있다.
예술가들이 자리 잡고 있던 예전의 홍대와 신촌의 그런 거리이다.
꿈속의 나는 홍대와 신촌 중에 어디에서 내릴까 늘 고민한다.
꿈에서 아기자기한 수많은 상점들을 구경하는 것이 나의 낙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의 꿈은 조금 다르다. 나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홍대 앞이었나. 상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아름다운 소품을 파는 화려한 상점으로 들어갔다.
다이어리를 직접 만들어서 파는 곳이다.
공을 들여서 만든 통가죽 다이어리와 수많은 사이즈의 다이어리 내지들이 진열되어 있다.
아무리 찾아도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생각해 보니 내가 메고 있던 가방 안에는 노트북과 거대한 다이어리가 들어있다.
가방 안을 얼핏 보고 다시 문을 나선다.
다른 가게를 들어갔다. 미학적으로 나의 취향을 딱 반영한 그런 가게의 외양이 나를 이끌었다.
노란색과 핑크가 질감과 톤을 맞춰 완벽하다.
그 안에서 파는 그 어떤 것이라도 나를 만족시킬 것이 있을 것만 같다.
가게의 안에는 여학생들이 조잘거리며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림들과 물감 재료만이 있을 뿐 판매하는 물품은 없다.
알고 보니, 상점이 아니라 미술학원이다.
나오는 문에서 마주친 모녀는 아무것도 더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은 미소를 짓고 있다.
그들이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이들이다.
나는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채 그들의 미소에 상대적 상실감을 느끼며 길을 나섰다.
어깨에 맨 가방이 번잡스럽다.
끈으로 묶는 군용 팩을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
15인치 노트북이 들어가고도 남는 커다란 체크무늬 버버리 가방에 쑤셔 넣었다.
군용 팩에는 노트북이 들어있다. 나의 모든 글을 쓰는 그 노트북.
이것이 내가 오늘 꾼 꿈이다. 이상한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