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붕괴를 동반하는 심리적 충격의 과정
*사진: Unsplash
고통에 대해서 글을 써왔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다 적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고통에 대해서 적을 수 있게 된 걸까?
글의 주제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서 잘 모른다.
다만 그런 글을 쓰고 있으니 드는 생각이다.
내가 그를 만나서 겪었던 고통은
관계적 상처라기보다는
존재의 붕괴를 동반하는 심리적 충격이었다.
나는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글로도 수없이 말했지만,
그 고통의 정체를 한 번도 정확하게 적어본 적은 없다.
구조적으로, 깊이 있게, 나의 내면에서 실제로 일어난 현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고통의 시작과 그 과정에 대해서
1. 자기 붕괴형 고통을 겪다.
그는 내 경계와 감정 리듬을 무시하며,
나의 내면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다가왔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HSP이자 심층 감각을 가진 나에게는
이런 일이 발생했다.
자신의 감정인지, 타인의 감정인지 구분이 흐려짐
내면의 질서가 깨짐
신체적 긴장과 위협 신호 - 신체화 현상이 활성화됨
나는 무엇을 느끼는 사람이지?라는 혼란이 시작됨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분노가 올라옴
자기성(selfhood)을 잃는 고통을 겪는다.
이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에 가장 높은 상태의 고통이기도 하다.
2. 나는 그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 고통은 더 가중되었다.
그의 감정, 욕망, 혼돈, 불안이
나에게 그대로 밀려들었다.
나는 그 감정을 공명하고 감지하는데
그는 스스로 그 감정의 구조를 몰라서
그의 혼돈은 그대로 나에게 '투하'되었다.
그의 지옥 속에 나는 그대로 내던져졌다.
그 결과,
타인의 불안, 공포, 결핍을 내 감정처럼 느끼는 상태
감정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태
신체 감각이 무겁고 흐리고, 방향성 상실
그건 남의 감정 쓰레기장을 청소하는 고통이다.
3. 그의 미성숙함은 '관계적 폭력'처럼 작동했다.
그는
감정 조절이 전혀 안 됐고,
상대의 리듬도 이해할 수 없고,
불안할 때 더 집착하거나 모욕하거나 공격적이 되는 구조였다.
그래서 내가 받은 고통은 이런 형태였다.
내가 하지 않은 감정에 대해 비난받는 느낌
보이지 않는 책임이 떠넘겨지는 느낌
상대의 혼란을 내가 해결해야 하는 느낌
'내가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지?'라는 부당감
상대의 모든 존재 자체의 고통을 다 떠안는 느낌
이런 것들은 폭력적으로 갑자기 다가와서 영혼의 과부하를 만든다.
4. 나는 경계를 명확히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에너지적 연결형' 인간이다.
그래서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나의 에너지는 아래와 같이 무너진다.
자신의 리듬이 끊기고
집중력이 사라지고
글이 안 써지고
몸은 돌아가면서 아프고
잠에서 악몽처럼 계속 깨어난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의 비몽사몽 상태
이건 감정적 고통을 넘어서서
존재 기반이 흔들리는 고통이다.
5. 그는 내 내면에 있는 '상처 난 부분'을 집중적으로 자극했다.
그는 내가 평생 견고하게 세워둔
내적 구조의 균열만을 찾아서 뒤흔들었다.
예를 들면,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내가 문제인가?
이런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고통을 느꼈다.
나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밀려들어오면
뇌와 심장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끝나지 않는 톱질로 해체되었다.
그 금속이 뚫고 들어오는 감각 그리고 반복 반복 반복
6. 나의 영혼은 그를 '구조적 위협'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나는 본능적으로
경계 강화
거리두기
감정 차단
직관적 후퇴를 했다.
이런 것들은 삶을 지키려는 생존 반응이다.
7. 결론
나는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통해 고통을 겪었다.
그 고통은 살면서 느꼈던 모든 관계의 고통을 다시 꺼내서
심화 재생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통해서
나의 그림자를 만나고, 경계를 세우고,
자기 회복력을 깨웠다.
그를 만나고 나서 나는
남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경계 세우기
자기 구조를 지키는 법
투사 걷어들이기
나의 감정과 남의 감정을 구분하기
아니마/아니무스 재통합을 배웠다.
이 모든 것들을 대면하게 된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은 다른 방법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계는 영적, 심리적 성장을 촉발하는 사건이 된다.
그 사건을 통과하며 나는 스스로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써왔다.
이는 고통에서 발버둥치면서 했던 작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