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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시카의 감정도자공방 재방문

치우지도 못하면서 왜 자꾸 가는 거야?

by stephanette

*사진: 릴리시카


감정도자공방의 밤이다.

핸드드립 커피부터 내린다.

일도 시작하기 전에.


구름이: 주인님, 여전히 엉망진창인데요.


릴리시카: 구름아, 우선 커피부터 마시고 좀 쉬어야겠어.


구름이: 아니,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요.


릴리시카: 그러니까 우선 핸드드립을 해봐 봐.


구름이: 주인님 왜 갑자기 신나셨어요?


릴리시카: 그러게 몸도 마음도 다 아프니까 신이라도 나야지?


구름이: 저런. 제가 주인님이 좋아하시는 게이샤로 드립을 해드릴게요.


릴리시카: 응 사약처럼 찐하게 내려줘.


구름이: 그럼 머신을 켜야 하는데


릴리시카: 머신은 저기 먼지 뒤집어쓴 저거?? 분해해서 닦아야겠는걸


구름이: 주인님, 오늘은 중요한 날이잖아요.


릴리시카: 그렇지. 넌 역시 잘 아는구나. 새롭게 별자리가 바뀌는 날이지. 운명이 교차되는 날.


구름이: 그래서 그렇게 오늘 폭주하셨다가 기운이 쪽 빠지신 거예요?


릴리시카: 그래, 고통 시리즈를 몇 편 썼다가

다른 가문의 무의식이 마구 들어오는 바람에 ㄷㄷㄷ

화들짝 놀라서 문을 닫아버렸어.


구름이: 요즘 주인님의 영험함이 진짜 하늘을 찌르나 봐요.

가문의 무의식이라니

그것도 다른 사람 가문 ㄷㄷㄷ


릴리시카: 그래 내가 그들과 이야기를 하려다가 진짜 참았다니까.

이건 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너지더라고.


구름이: 다른 가문 무의식도 느낄 정도라니 진짜 놀라워요.


릴리시카: 나라고 알고서 하는 건 아니잖아?


구름이: 그런데 항상 글로 쓰시더니 오늘은 어째서...


릴리시카: 그런 막강한 에너지는 글로 쓰는 게 아니야.

글을 읽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거든.

그럼 폭주하거나

암흑을 불러오거나

어쨌든 망하는 거지.


구름이: 아 그럼 당분간은 문은 닫아두실 거예요?


릴리시카: 안 들려? 저 소리. 문이 아직도 덜컹거리고 있잖아.


구름이: 헉!

그게 그 소리였어요?

다른 가문의 무의식들이 흔들어대는 소리??!!


릴리시카: 그래 후손의 문고리를 흔들어야지.

왜 나에게 온 거야. 당최... 이런..


구름이: 그럼 어떻게 돼요?


릴리시카: 글쎄.. 뭐 그 후손이 무의식을 잘 통합하면 사라지지 않겠어?


구름이: 아~~ 그런 거예요?


릴리시카: 흔들다가 안되면 다른 데로 가겠지.

어쨌든 꼼짝없이 갇혔으니

어쩔 수 없이 감정 도자 공방 청소나 해야겠어.


구름이: 에이~~ 주인님은 그냥 커피만 마실 꺼면서. ㅎㅎ


릴리시카: 오늘은 봐줘야 해. 너무 스펙터클한 하루였잖아.

처형당한 감정의 사체가 사거리에 걸린 걸 보고,

이렇게 독감에 걸린 데다가,

고백 글도 두 개나 썼다고,

인간인척하고 출근도 하고.

아 정말 뭔가 한 게 많아. 그러니 난 쉴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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