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이 먹는 뱀과 감정의 장례식 2

뱀과의 동거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 주의! 이 글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이고,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상상이 아니니 유의하세요.

(특히 당신의 감정이 비슷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면, 반려 뱀을 맞이하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아침, 침대에서 잠이 깼다.

어렴풋이 전날의 생각이 난다.

물가에서 만날 인연

그래, 만나긴 했다.

그건 사람이 아니라 뱀이었지만.


이런,

침대 모서리 너머로 무언가 검은 것이 보인다.

침대 밑이다.

거대한 뱀의 검은 몸이 침대 바깥으로 흐르는 강줄기처럼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검은색이라고 하기엔 한 방울의 초록이 섞여 있는 그런 색이다.

모니터 화면으로 구분되지 않지만, 막상 인쇄를 해놓으면 미묘하게 밝은

반전을 해야 겨우 핑크로 구분이 가능한 정도의 짙은 초록

아니, 초록 한 방울 섞인 블랙.


환영이란 늘 그렇듯이 초점이 잘 맞지 않으니 선명하진 않다.

그러니 내게는 짙은 회색 정도로 보일 뿐이다.

뱀의 머리는 침대 아래 있다.


"늘 따라다닌다고 하더니 진짜 있네."

나의 말을 들을 뱀은 자고 있으니 혼잣말이 되고 말았다.


오후, 잠시 침대에 누워서 쉬었다.

뱀은 계속 그 자세 그대로 있다.

미동도 없이.

"어째 일어나질 못하니." 싶어져서 다시 말을 걸었다.

"자나?"


하긴, 생각해 보니 못 일어날 만도 하다.

뭘 먹고사는 건가?

가식 없이 느끼고 흘려보낸 모든 날 것 그대로의 감정?

아니면, 진실과 깨달음?

혹은 버려지고 억눌러버린 것들,

내 안의 그림자 조각들?

혹은 내가 읽은 책들과 써 내려간 글들,

의식의 차원을 넓혀준 통찰

그런 모든 영혼의 음식들?

나의 생명 자체,

진짜 살아 있는 나의 감각들?


찰나와도 같은 나의 하루는 뱀에게는 별 것 아니겠지만

계속 잠만 자는 이 친구를 깨워주려면 보양식이라도 먹여야 할 것 같다.


"귀찮은 명상도 기도도

꼼짝없이 이제는 제대로 해야 하는 건가."


우선, 이름부터 붙여줘야 하겠다.

"뭐라 하지?

미도리(緑) 블랙이라고 해야 하나?"


"미도리 블랙,

기운이 나면 내 척추를 타고 올라와서

심장을 깨우고 눈을 뜨게 해 줄 거야?

날 삼키진 않을 거잖아?

넌 변혁과 생명의 에너지니까.

어쨌든 나는 경건하게 잘 살아볼게.

네가 먹을 게 없으니.

당분간은 뭐 그렇게 좀 지내보렴."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가 미도리 블랙을 사육하려고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 문장 하나를 소리 내어 삼키고 있다.

저런...

그의 배 속에서, 나의 문장이 빛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러니까 말이야

난 지금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뱀에게 음식을 주고 있는 거야."


가끔은 그가 깨어나

척추를 타고 오를 거야.

심장이 두근, 눈이 번쩍,

그리고 난 알게 되겠지.

"아, 저 문장..

그게 그를 깨운 첫 한 입이었구나."라고


이제는 빵가루나 던져대던 그를 놀려먹는

(이라 하고 우아하게 돌려서 욕하기라 쓴다)

혼자만의 유희글도 못쓰게 생겼군. 그게 제일 재미있는 부분인데.


"나 참, 이런..

앞으로 자기소개엔 글을 먹여서 반려 뱀을 키운다고 해야 할까?"


작가 프로필 :

글을 먹여 반려 뱀을 키웁니다.

그 뱀은 침대 밑에 살며,

문장 하나를 먹고 제 심장을 깨웁니다.


"이런, 참 난감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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