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고

질(Quality)은 정렬(alignment)이다.

by stephanette

- 로버트 M. 피어시그 (Robert M. Pirsig)


질(Quality)은 정렬(alignment)이다.

이는 과정 중심도 결과 중심도 아니다. 그 둘을 가르기 이전에 작동하는 기준이다.


모터사이클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과정이 중요할까? 아니면 결과가 중요할까?

그 둘을 구분할 수 없다. 질은 결과가 나온 뒤에 평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퀄리티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가 따라온다.

이는 사후 평가가 아니라 사전 기준이다.


아무리 정성을 들였어도 모터사이클이 작동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조율이 안되고 연결이 끊기면 그것은 질이 낮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질은 과정의 태도를 포함하지만,

과정에 대한 자기위안은 허락하지 않는다.


퀄리티는

과정과 결과를 가르는 질문 자체를 무력화한다.


이 선택이 지금 "맞다"는 감각이 있는가

이 손의 각도는 자연스러운가

이 판단이 억지 없이 이어지는가

결과가 나오지 않은 시점에도 이미 "아, 이건 틀어졌다."는 바로 그 느낌.

그것이 퀄리티이다.


피어시그가 말하는 '질'은

지금 이 순간, 세계와 나의 작동이 어긋나지 않은 상태이다.


질은 판단이 아니라 상태이다.

보통 말해지는 '퀄리티'는 주로 이렇게 사용된다.

"이건 질이 좋다"는 말은 평가이다.

"이건 결과가 좋아"는 말은 사후 판단이다.

"이건 과정이 성실했어"라는 말은 태도 평가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퀄리티는 이 모든 "판단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다.

퀄리티는 맞다/틀리다를 생각하기 전에 이미 몸과 사고가 아는 상태이다.

이는 개념이 아니라 경험이자,

의견이 아니라 정렬(alignment)이다.


그렇다면, 정렬이란 무엇인가?

정렬이란,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과 행동하는 것과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
이 네 가지가 서로 어긋나지 않은 상태이다.

하나라도 엇나가면 퀄리티는 즉시 떨어진다.


정렬이 깨어질 때 우리가 느끼는 신호들

정렬이 깨어지면 아주 미세한 신호가 먼저 온다.

설명은 맞는데 손이 이상하다.

논리는 완벽한데 계속 걸린다.

열심히 하는데 진도가 안나간다.

결과는 나오는데 스스로 납득이 안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예민한가? 조금만 더 하면 되겠지. 결과만 나오면 괜찮아. 라고.

이는 자기기만의 시작이다.

질의 감각은 이미 "지금 어긋났다"라고 말하는데, 이성을 앞세워 그 신호를 무시한 것이니까.


정렬 상태에서만 가능한 사고의 특징

1. 억지 설명이 필요없다. - 이는 명확함이다.

2. 다음 행동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막힘이 없다.

3. 속도가 빨라지지 않아도 효율이 높다. - 서두르지 않아도 무방하다.

4. 자기 방어가 필요 없다. - 변명, 합리화, 과잉 설명이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기계가 잘 돌아가는 상태이자, 정신이 잘 작동하는 상태이다.


왜 질은 과정/결과의 구분을 무너뜨리는가?

과정 중심 사고는 "나는 성실했는가"를 묻고

결과 중심 사고는 "성과가 나왔는가" 묻는다.

그러나 질은 이렇게 묻는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선택이
나와 세계 사이에서 어긋나지 않는가?"

그래서 질은 과정의 핑계도 결과의 자랑도 모두 허용하지 않는다.

정렬이 되어 있으면,

과정은 군더더기 없이 진행되고,

결과는 과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퀄리티는 정확성이다.

퀄리티는 착함도 성실함도 노력도 아니다.


퀄리티는 정확성이다.

이 나사 지금 이 각도가 맞는가? 이 문장, 지금 이 위치가 맞는가? 이 말, 이 타이밍이 맞는가?

정렬 상태에서는 왜 이렇게 해야하지?라는 질문이 사라진다. 이미 맞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질이 무너질 때 인간이 힘들어지는 이유

정렬이 깨어지면 인간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1. 통제의 강화 - 더 조이고, 더 관리하고, 더 계산한다.

2. 의미 포기 - 원래 다 그런거지라며 감각을 끊는다.

이는 광기와 무기력의 갈림길이다.


퀄리티는 그 중간에서 작동한다.

통제하지 않지만 방치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무의미하지 않은 상태


그래서 질은 '정렬된 삶'의 기준이다.

질은

삶을 잘 설명하는 기준이 아니다.

삶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기준이다.


지금 이 선택은
나와 세계 사이에서
어긋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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