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좋아한다고 해서 정서적 자립이 된 것은 아니다

고독은 성숙일 수도 회피일 수도 있다.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외로움을 좋아하는 것과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은 다르다.

고독과 정서적 자립과의 미묘한 차이점에 대해서


외로움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고, 고독이 필요하며, 타인과의 접촉이 과도해질 때 피로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이 곧 관계 안에서의 정서적 자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외로움 선호는 성향일 수 있지만, 머무름의 능력은 성취다. 이 둘은 심리적으로 전혀 다른 층위에 속한다.


도널드 위니컷이 말한 ‘혼자일 수 있는 능력(capacity to be alone)’은 단순히 혼자 있는 것을 견디거나 즐기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 안에서도 자기 중심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위니컷에 따르면, 이 능력은 내면화된 안정적 대상이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즉, 혼자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어도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만이 정서적으로 자립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애착 이론 역시 이 차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안정 애착을 지닌 사람은 혼자 있을 때도 무너지지 않고, 관계에 들어가도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반면 회피 애착을 지닌 사람 역시 혼자 있기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 혼자 있음은 자립의 결과가 아니라 방어의 결과다. 친밀해질수록 감정을 차단하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거리를 두며, 정서적 의존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관계 안에서는 정서적 자립이 작동하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은 고독을 생산적 고독과 고립으로 구분한다. 생산적 고독은 자기 자신과 연결된 상태이며, 타인과의 관계로도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다. 반면 고립은 관계로부터의 철수이며, 불안과 두려움을 관리하기 위한 전략이다. 외로움을 좋아한다는 진술은 이 두 상태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자동으로 증명하지 않는다. 관계에 들어갔을 때의 작동 방식이 그 차이를 드러낸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도 혼자 있음은 반드시 성숙의 지표로 간주되지 않는다. 클라인 계열 이론에서 혼자 있기를 선호하는 태도는 감정적 침투에 대한 공포, 의존에 대한 불안, 통제 상실에 대한 방어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경우 혼자 있을 때는 안정적이지만,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 통제 욕구, 감정 차단, 거리 두기가 강화된다. 이는 정서적 자립이 아니라 관계 회피의 구조다.


영성적 관점에서도 이 구분은 반복된다. 크리슈나무르티는 고독과 고립을 명확히 나눈다. 고독은 충만한 상태이며, 고립은 두려움의 결과다. 고독은 타인과의 연결을 배제하지 않지만, 고립은 연결 자체를 위협으로 인식한다. 외로움을 좋아하면서도 친밀함을 두려워하고, 감정 교류를 부담스러워하며, 책임 있는 관계를 피한다면 그것은 고독이 아니라 고립에 가깝다.


이 차이는 사랑이 가능한지 여부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칼 융에게 사랑은 융합이 아니라 분화 이후에만 가능하다. 개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사랑은 투사이며, 상대를 통해 자기 내부의 결핍을 처리하려는 시도다. 이 경우 관계는 머무름이 아니라 의존으로 흐른다.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나는 너와 함께 있지만, 너로 살지는 않는다”는 구조가 유지되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능력으로 정의한다. 사랑은 빠져드는 상태가 아니라 돌봄, 책임, 존중, 이해라는 실천의 집합이다. 여기서 책임은 상대의 감정을 대신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반응에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선택하는 관계만이 지속 가능하다.


틱낫한은 사랑이 상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야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평정과 공간이 유지되지 않는 관계는 오래 머무를 수 없다. 크리슈나무르티 역시 사랑에 두려움이 개입되는 순간 사랑은 끝난다고 말한다. 붙잡음이 필요 없는 관계만이 지속될 수 있다.


이 모든 이론을 종합하면, 사랑이 가능한 머무름의 조건은 명확하다.

첫째, 자기 정체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둘째, 정서적 자립이 전제되어야 한다.

셋째, 책임의 경계가 명확해야 한다.

넷째, 거리와 친밀함 모두를 두려움 없이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머무름이 생존이 아니라 선택이어야 한다.


외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관계 안에서 혼자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혼자 있는 편안함은 성향일 수 있지만, 관계 속에서도 중심을 유지하는 능력은 발달과 훈련의 결과다. 정서적 자립은 고독의 취향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검증되는 능력이다.


사랑은 강해서 머무는 것이 아니다.
머무르지 않아도 살 수 있기 때문에 머무는 것이다.
이 조건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사랑은 시작이 아니라 지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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