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of Being Wild
*사진: Unsplash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비정전』은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 영화다. 인물은 행동의 이유를 말하지 않고, 감정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서사보다 상태다. 인물들이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머무는 방식이다.
영화 속 반복되는 비유는 ‘새’다. 발이 없어 내려앉지 못하는 새, 날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쉬고, 단 한 번 땅에 닿는 순간은 죽을 때뿐이라는 말. 이 비유는 단순한 운명론이 아니라, 주인공 아비의 존재 방식을 정확히 설명한다. 그는 관계를 맺지만 머물지 않고, 사랑을 주지만 책임지지 않는다.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 자유는 선택이 아니라 회피의 다른 이름에 가깝다.
아비는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고통을 자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감정의 증거처럼 소비한다. 그는 버림받았다는 기억을 정체성으로 삼고, 그 기억을 반복 재생하며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한다. 관계는 그에게 위안이 아니라 확인 장치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여성 인물들은 아비의 자유를 동경하면서도 그 자유가 자신에게는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점점 인식하게 된다. 그들은 사랑을 통해 머무르려 하지만, 아비는 사랑을 통해 떠난다. 이 불균형은 갈등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침묵과 시선, 지연된 반응으로 축적된다. 이 영화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언제나 간접적이다.
왕가위의 연출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공간과 색으로 남긴다. 녹색과 붉은 조명, 느린 카메라 이동, 단절된 대화.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보지만 완전히 닿지 않는다. 화면은 늘 가까운 듯 멀고, 친밀한 듯 고립되어 있다. 이는 관계의 실패라기보다 관계가 성립하지 못하는 구조를 시각화한 것이다.
『아비정전』은 성장 서사가 아니다. 인물들은 변화하지 않고, 깨닫지도 않는다. 다만 이동한다. 장소를 옮기고, 사람을 바꾸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 이동은 전진이 아니라 회피의 연장이다. 그래서 영화의 끝에서도 해소는 없다. 남는 것은 방향을 잃은 움직임뿐이다.
이 영화는 말한다.
날아다니는 것이 자유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려앉지 못하는 삶은 결국 살아 있음의 부재에 가깝다고.
발이 없는 새는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죽음까지 미룰 뿐이다.
『아비정전』은 자유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머무를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