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끄는 기술

반두라의 도덕적 이탈과 양육강식 세계관의 결합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 알베르트 반두라(Albert Bandura)


1. 문제의 핵심은 ‘악한 성격’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악을 설명할 때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같은 성격 진단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반두라가 한 일은 정반대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왜 스스로를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믿는 이들이
죄책감 없이 타인을 훼손할 수 있는가?”

여기서 악은 기질이 아니라

작동 방식, 다시 말해 인지 기술의 문제로 전환된다.


2.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의 본질

반두라의 핵심 통찰은 이것이다.

인간은 도덕을 잃지 않는다.
다만, 필요할 때 도덕을 적용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다.

즉,

양심이 없는 게 아니라

양심을 ‘끄는 스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

이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

자기 검열, 죄책감, 수치심은 작동을 멈춘다.


3. 도덕적 이탈의 8가지 장치 — 악의 사용 설명서

반두라는 도덕적 이탈이 체계적이라고 본다.

그는 이를 4개 영역, 8개 장치로 분해했다.


1) 행동을 ‘선’으로 포장하는 기술

가. 도덕적 정당화

“이건 더 큰 선을 위한 것이다.”

통제, 침범, 압박이 ‘배려’와 ‘지도’로 둔갑한다.


나. 미화된 언어 사용

폭력은 사라지고, 말만 남는다.

통제는 관리가 되고, 침해는 관심이 된다.

언어는 감정을 마취시키는 마취제다.


다. 유리한 비교

“이 정도면 약과지.”

기준은 항상 더 잔혹한 사례로 이동한다.


2) 책임을 증발시키는 기술

라. 책임 전가

상황, 규칙, 역할 탓

행위는 있었지만, 행위자는 없다.


마. 책임 분산

“다들 그렇게 한다.”

집단은 개인의 양심을 가려주는 완벽한 방패다.


3) 피해를 지워버리는 기술

바. 결과 축소·왜곡

“별일 아니야.”

고통은 해석의 문제로 전락한다.


4) 상대를 ‘사람’에서 제거하는 기술

사. 피해자 비난

“저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으니까.”

원인은 늘 상대에게 있다.


아. 비인간화

예민한 사람, 문제 있는 사람

감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결함 있는 객체가 된다.


이 8가지가 완성되면

가해는 더 이상 가해가 아니다.

합리적 선택이 된다.


4. 양육강식 세계관: 도덕적 이탈의 토양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이 장치들을
이렇게 쉽게, 반복적으로 사용하는가?

그 답이 바로 양육강식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의 기본 명제는 단순하다.

강한 자는 취할 권리가 있다

약한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고통은 무능의 결과다

여기서 도덕은 보편 규범이 아니다.

힘이 있을 때만 적용되는 사치품이다.


5. 공감 결핍이 아니라, 공감 차단

중요한 오해 하나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 유형은 공감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필요할 때는 매우 정확하게 공감한다.


다만,

불리해지는 순간

책임이 발생하는 순간

공감은 즉시 차단된다.


그들에게 공감은 관계 윤리가 아니라

전략적 도구다.


6. 무시·경멸·모욕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다

양육강식 세계관 안에서

무시, 경멸, 모욕은 감정 폭발이 아니다.

기능적 행위다.

무시 → 상대의 존재를 지운다

경멸 → 위계를 고정한다

모욕 → 자존감을 파괴해 통제를 강화한다

상대가 흔들릴수록

자기 우위는 공고해지고

내적 쾌감은 상승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도덕적 이탈 덕분에 양심의 저항 없이 실행된다.


7. 이 구조가 가장 위험한 이유

이 구조의 진짜 위험성은 이것이다.

가해자는 끝까지
자기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이런 문장이 가능해진다.

“난 진심으로 도와주려 했다”

“난 아직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가 예민한 거다”

여기에는 위선이 아니라

완성된 내부 논리가 있다.


8. 결론 — 이것은 성격 문제가 아니다

반두라의 이론과 양육강식 세계관을 결합하면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이 악은 잔혹해서가 아니라
정당화될 수 있어서 지속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


이 구조는

설명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공감 요청으로 바뀌지 않는다.

관계 회복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이건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구조 인식과 차단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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