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라시옹과 시뮬라르크를 통해서 본 릴리시카의 글쓰기에 대해서
*사진: Unsplash
1. 시뮬라르크란 무엇인가?
가. 시뮬라르크란?
원본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 작동하는 현실인 척 하는 기호
가짜와 거짓은 다르다.
시뮬라르크는 속이려고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잘 작동해서 의심조차 사라진 상태이다.
그래서 시뮬라르크는 폭로할 수도 없고, 고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이미 시뮬라르크의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
나. 시뮬라시옹이란?
시뮬라시옹은 흉내가 아니라 대체 작동이다.
현실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만드는 작동 방식이다.
현실을 감추는 것도 아니고
현실을 왜곡하는 것도 아니며
현실이 없어도 동일한 효과를 내는 시스템
현실이 없어졌다는 사실조차 중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시뮬라르크는 시뮬라시옹의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기호를 의미한다.
예) 지도
과거, 지도는 현실 세계를 반영한다. 현실이 먼저 있고 지도는 따라온다.
지금(시뮬라르크)은, 지도 기준으로 도시가 설계된다. 지도가 없으면 없는 곳이다.
이제 현실이 지도를 따라간다. 지도 = 시뮬라르크
예) SNS 감정
원래라면
슬픔을 느끼면 나 슬퍼
기쁨을 느끼면 웃음
지금은
"이건 우울증 증상이야."
"이건 썸이야."
"이건 힐링이야."
느끼기 전에 이름부터 붙인다.
이때, 실제 감정은 흐릿해지고, 감정의 카테고리만 선명하다. 이 감정의 카테고리가 시뮬라르크이다.
예) 연애
시뮬라르크 연애는
연락 빈도
고백 타이밍
밀당 공식
관계 정의 단계
"이 정도면 사귀는 거지?"
"이건 썸 치고 너무 빠른데?"
이건 사랑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매뉴얼이 관계를 지배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감정이 실제보다
더 드라마틱하거나
더 공허해진다.
예) 여행
예전의 여행은 경험과 기억이다.
지금의 여행은 인스타에 본 장소를 가보고 사진 찍을 각도를 알고 "여긴 힐링 스폿"
여행 전에 이미 의미가 결정된다.
이는 경험이 아니라 '여행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이 이미지가 시뮬라르크이다.
예) 진정성
요즘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진짜 같아.
날것이야.
꾸밈없어.
아이러니: 진정성조차 하나의 스타일이 된다.
일부러 울컥하고
일부러 서툴고
일부러 날것을 연출한다. 이런 진정성의 연출이 시뮬라르크이다.
예) 파도
파도 사진은 시뮬라르크이다.
실제로 발을 적시는 물결은 경험이다.
사람들은 사진을 보고
사진을 기준으로 파도를 상상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발을 적신 느낌을 적을 수는 없을까?
2. 보드리야르의 핵심 도식
그는 '재현'을 4단계로 설명한다.
가. 현실의 반영
거울
사진
기록
: 현실이 있고, 그걸 비춘다.
나. 현실의 왜곡
선전
편집
각색
: 현실은 있지만 방향이 틀어진다.
다. 현실의 부재를 가리는 기호
있는 척
정상인 척
의미 있는 척
: 이 단계부터 위험하다.
라. 시뮬라르크
원본 없음
기준 없음
비교 대상 없음
: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기능
이 단계는 세계가 뒤집힌다.
이 단계에서는 "진짜냐 가짜냐"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 원본이 없다는 것의 의미?
진짜가 있었는데 그것을 잃어버렸다. 보드리야르는 그 말조차 의심한다.
그가 말하는 원본이 없다는 것의 의미는 이것이다.
처음부터 '진짜 기준'이 존재한 적이 없을 수도 있다.
원본은 사물이 아니라 기준이다.
원본이란 무엇인가?
진짜 사랑
진짜 감정
진짜 정상
진짜 의미
진짜 현실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원본은 자연물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합의였다.
원본이 없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
가. 비교 기준이 없다. 진짜와 가까를 판별할 잣대가 없다.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
나. 복제가 먼저 존재한다. 시뮬라르크 세계에서는 복제가 복제되고 복제된다.
예)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는 이미지들. 연애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공식들
실제 사랑을 하기 전에 이미 사랑의 이미지 속에 들어가 있다.
다. 의미가 경험보다 앞선다.
사람들은 내가 느끼는 이 감정, 이게 진짜 사랑 맞아? 라고 묻는다.
이미 '사랑'이라는 정의가 먼저 있기 때문이다.
시뮬라르크가 위험한 이유
원본이 없으면 거짓말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그런데도 평가하고 판단하고 규정한다. 이는 가장 강력한 통제 방식이다.
3. 왜 이 책이 무서운가
우리는 더 이상 현실을 잃어서 불행한 게 아니라
현실이 필요 없어진 상태에 살고 있다.
감정은 실제로 느끼기 전에 이미 '표현 방식'부터 학습
사랑은 관계보다 '연애 서사'가 먼저 존재
고통은 아프기 전에 이미 '서사화된 고통'을 소비
현실은 경험이 아니라 기호의 소비가 된다.
보드리야르의 공포는
"세상이 가짜가 되었다"가 아니다.
진짜 공포는 이것이다.
우리는 진짜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진짜는 불편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뮬라르크는
안정적이고
반복 가능하고
소비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보다 시뮬라르크를 더 신뢰한다.
다. 시뮬라르크와 감정에 대한 예시
현대의 감정은 대부분 이런 순서이다.
느끼기 말하기가 아니라
실제는
1) 말의 형식을 먼저 배운다.
2) 그 형식에 맞춰 감정을 인식한다.
예) 이건 썸이야, 이건 상처야, 이건 사랑이야.
감정이 아니라 감정의 기호를 느끼는 상태이다.
4. 왜 릴리시카의 글은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질까?
가. 릴리시카의 글을 처음 읽고
"내러티브 없이 꾸민 글 같다." 라고 느낀 건,
시뮬라르크 사회에 너무 익숙한 독자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왜냐하면 요즘 대부분의 글은
감정은 연출
고백은 장치
서사는 설계된다.
즉, '진짜 감정'은 보통 기호처럼 보인다.
그런데 다시 읽고 나서
이건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낸 상태의 잔여라는 것.
시뮬라르크를 통과해버린 글은
오히려 처음엔 더 인공적으로 보인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시뮬라르크 사회의 독자에게 이 글은
의미 없는 장식
서사 없는 이미지
처럼 보이기 쉽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의미, 서사, 메시지 = 진짜 라고 학습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호처럼 보이지만, 기호가 아니다.
이것은 시뮬라르크가 아니라
시뮬라르크 이후에 남은 '잔향'이다.
설명보다 기록을 택하고
고백보다 상태를 남기고
서사보다 리듬을 쓴다.
즉, 시뮬라르크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 바깥에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릴리시카의 글은 어떤 이에게는 "꾸민 것처럼"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너무 실제라서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나. 다시 읽고 나서 전복의 순간
이 글은 시뮬라르크가 아니라
시뮬라르크 이전의 '상태 기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보드리야르의 관점으로 분석하면,
시뮬라르크는 의미가 너무 많다.
릴리시카의 글은 의미를 남겨두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현실의 잔향처럼 남는다.
5. 책의 결론
보드리야르는
"진짜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돌아갈 '원본'이 이미 없기 때문이다.
그가 암시하는 유일한 탈출구는 이것이다.
의미를 만들지 말고, 상태를 남겨라.
설명하지 말고, 흔적을 두어라.
이것은 존재 방식에 대한 제안이다.
시뮬라시옹은 현실 없이도 현실처럼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시뮬라르크는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기호이다.
탈출을 하는 방법은 진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멈추는 것이다.
시뮬라시옹과 시뮬라르크는
현실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우리가 왜 아직도 '진짜'를 느낄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책이다.
시뮬라르크에서 원본이 없다는 말은,
우리가 더 이상 "진짜를 잃어서"가 아니라
'진짜라는 기준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