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시뮬라르크 이후 현대 철학의 확장 - 질 들뢰즈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이전 글, 장보드리야르와 시뮬라르크에 이어 지는 현대 철학에 대한 글이다.


이전 글의 요약

시뮬라르크 - 장 보드리야르

"이제는 원본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원본이 있었다는 믿음 자체가 시뮬라르크다."


시뮬라르크 4단계

1. 현실을 반영하는 이미지

2. 현실을 왜곡하는 이미지

3. 현실이 없음을 숨기는 이미지

4. 현실과 무관한 순수한 기호


현대는 4단계이다.

SNS의 나

브랜드 정체성

정치 이미지

힐링, 자기계발 담론

모두 원본 없는 복제


시뮬라르크 이후, 현대 확장 : 디지털, 자아, AI

21세기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원본보다 복제 자체의 생산성에 주목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속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믿는 것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거대 서사의 붕괴

진리는 이야기의 경쟁일 뿐


지금 여기

메타버스

인플루언서 자아

AI 이미지, 텍스트

브랜딩된 감정

현실보다 '설득력 있는 가상'이 더 강력


시뮬라르크 이후의 철학은
"무엇이 진짜인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무엇이 더 작동하는가?"를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일까?



질 들뢰즈의 철학과 천개의 고원


질 들뢰즈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완전히 뒤집은 사상가이다.

이는 상당히 급진적이다.


1. 질 들뢰즈는 무엇을 부정했는가?

그는 전통 철학의 이 전제를 부정했다.

원본이 있고 복제가 있다.

동일성이 차이보다 우선한다.

정체성이 변화보다 중요하다.

중심, 본질, 근원이 존재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사유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2. 들뢰즈 철학의 출발점 - 차이

"차이는 결핍이 아니다."


기존 철학에서는 차이를 이렇게 취급했다.

A와 B는 같지 않다. 그래서 B는 A(원본)보다 부족하다.


들뢰즈는 정반대로 말한다.

차이는 그 자체로 생산적이다.
차이는 원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차이와 반복', 들뢰즈


3. 반복의 재정의

반복은 똑같은 것의 재현이 아니다.


들뢰즈의 반복:

같은 형식 안에서 매번 다르게 발생하는 사건


예)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어도 매번 다른 의미가 생긴다.

같은 사랑의 말도 타이밍, 상태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반복은 차이를 증폭시키는 장치이다.


4. 시뮬라르크를 완전히 뒤집다.

보드리야르: 시뮬라르크=원본 없는 가상 즉, 위기

들뢰즈: 시뮬라르크=원본의 폭정에서 벗어난 해방


"왜 꼭 원본이 있어야 하지?"

"복제 자체가 창조일 수는 없을까?"

들뢰즈에게 시뮬라르크는 위조가 아니라 '창발'이다.


5. 리좀(Rhizome) - 세계는 뿌리가 없다

나무 모델 VS 리좀 모델

전통 사고: 뿌리 - 줄기 - 가지 - 잎

들뢰즈: 어디서든 연결되고 중심과 위계가 없음. 그는 이를 리좀이라 부른다.


리좀(Rhizome)

인터넷

인간관계

욕망

무의식

사유의 흐름

시작도 끝도 중심도 없이 연결만 있다.


6. 욕망에 대한 혁명적 정의

들뢰즈 +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


기존: 욕망 = 결핍 즉, 뭔가 없어서 원하는 것

들뢰즈: 욕망은 생산적이다.

욕망은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관계를 만들고

세계를 조직한다.


"욕망을 억압한 사회는 창조성을 죽인다."


7. 주체 즉, 나에 대한 관점

나는 고정된 자아가 아니다.

나는 하나의 흐름

사건들의 집합

상태들의 교차점이다.


생성(becoming)과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


나는 되는 중이지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건 진짜인가?"를 넘어서서 들뢰즈는

"이건 무엇을 만들어내는가?"를 묻는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불안정하지만, 위험하지만, 지금 시대에 가장 살아있다.



요약

플라톤: 본질이 먼저다데카르트: 주체가 먼저다

칸트: 인식 구조가 먼저다

보드리야르: 가상이 현실을 대체했다

들뢰즈: 생성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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