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을 알아차리는 명상

티베트 불교 용수스님, 명상의 3가지 핵심 가르침 - 기초명상 법문 1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생각하는 것은 가장 표면적인 차원이다.
고요함을 알아차리는 명상은 그 아래에 있다.
현상을 알아차리는 연습.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고요함 속에 있다.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고요함으로 들어갈 수 있다.
명상은, 고요함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다.


명상은 생각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다.
생각을 알아차리는 훈련이다.
생각을 알아차리는 순간, 생각과 동일시되던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 상태가 곧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다.


생각은 에고의 작동 방식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아집이라 부른다.
생각이 강할수록 자기 집착은 강해지고, 고통은 커진다.
생각을 보면 집착이 약해지고, 마음은 자연스럽게 고요해진다.


마음을 본다는 것은 생각을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시선이 항상 밖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은 시선을 안으로 돌리는 일이다.


처음부터 마음을 보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가장 거친 대상부터 알아차린다.
보이는 것, 들리는 소리, 몸의 감각.
지금 이 방이 보이는지, 소리가 들리는지, 바람이 느껴지는지.
이 순간에 깨어 있는 연습이다.


산란함은 생각이 많은 상태가 아니다.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 빠진 줄 모르는 상태다.
생각을 하면서도 알아차릴 수 있다.
문제는 생각에 끌려가 동일시되는 것이다.


생각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생각과, 자동으로 발생하는 생각.
길을 찾고, 공부하고, 사유하는 생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동으로 반복되는 생각이 업이다.
불안, 비교, 분노, 피해의식 같은 습관적 사고다.


명상을 하면 처음엔 마음이 더 어지러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은 원래 어지러웠던 마음을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명상하니까 마음이 안 좋아졌다.”
아니다. 이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마음은 흔히 미친 원숭이에 비유된다.
가만히 두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문제를 만든다.
없는 고통을 만들고, 작은 일을 과장한다.
문자 하나에 과거의 기억과 상처가 연쇄적으로 반응한다.


예를 들어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오지 않을 때.
상대의 행동보다 먼저 자신의 업이 작동한다.
버림받을까 두려운 기억,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
그 상태에서 반응하면 마음은 더 복잡해진다.


알아차리면 다르다.
“아, 이건 기억이다.”
“이건 두려움의 습관이다.”
그 순간, 업은 힘을 잃는다.


업은 어둠 속에서만 작동한다.
알아차림은 빛이다.
빛이 비추면 업은 유지되지 않는다.
드라큘라가 햇빛을 견디지 못하듯 사라진다.


고요함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놓아진 자리에 드러난다.
물이 흔들리면 바닥이 보이지 않지만,
물이 잔잔해지면 저절로 보이는 것과 같다.


명상은 무엇을 애써 하는 일이 아니다.
마음을 그냥 두는 연습이다.
그러면 생각은 스스로 가라앉는다.
번뇌는 지혜로 바뀐다.
독이 약이 된다.


우리가 찾는 평화, 기쁨, 사랑은
새로 얻을 대상이 아니다.
이미 늘 거기 있다.
단지 생각이 가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명상을 배운다.
생각을 넘어
고요함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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