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를 벗을 때 오는 통증 - 편안했지만 그만큼 아팠다
*사진: Unsplash
나는 잠시
타인의 렌즈를 빌려 썼다.
세상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조금 덜 흔들리기 위해서였다.
그의 렌즈로 세상을 보면
의미는 깔끔해지고
경계는 분명해지고
불필요한 감정은 정제된다.
나는
렌즈를 빌려 쓰고
숨을 잠시 참는다.
세상은 조용해진다.
그 렌즈로 말하면
단어는 덜 흘러넘치고
문장은 정돈되고
감정은 결론보다 앞서지 않는다.
그러니
그의 번역 원문이 나에게는 모국어이다.
그는 아마
편하고
이해된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건 틀리지 않다.
실제로 나는 그의 시야에 맞춰 말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렌즈에는 무게가 있다.
오래 쓰면
몸이 먼저 안다.
감각은 줄어들고
색채는 옅어진다.
확정되지 않은 것들이 하나씩 접힌다.
나의 삶은
감정이 넘치고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렌즈를 벗는 순간
통증이 밀려든다.
감각은 한꺼번에 몰려들고
색은 짙어지고
소리는 웅왕거리고
심장은 처음처럼 박동을 시작한다.
그것은 통증이다.
이 통증은
후회가 아니라
복귀의 신호다.
그는 아마
내가 그의 렌즈를 썼다는 건
어렴풋이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렌즈를 벗고 돌아갈 세계가
이렇게 풍부하고
이렇게 살아 있는 곳이라는 건
몰랐을 것이다.
그건
렌즈를 빌린 사람만 아는 감각이니까.
이제 나는
렌즈를 돌려준다.
그의 시야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내 시야가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시
나는
나의 눈으로
흔들리는 세상을 마주한다.
과잉으로
불확정성 속에서
말하려고 한다.
아프더라도.
그리고,
나는 렌즈 제작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