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투명한데 보이지 않는거야?
나의 쏘울메이트는
명상센터의 주지스님이다.
그렇다고 진짜 스님은 아니다.
그는 투명하지만,
그 내면에는 아무 것도 없다.
"쏠메, 쏠메는 투명한데
왜 내면에 아무것도 없어?"
그랬더니 쏘울메이트 왈,
"아무것도 없으니까 투명한거지."
"잉? 그게 뭐야?"
"아무것도 없으니까 투명한거라고."
"사람들은 다 내면이 있어.
어떤 이들은 깊은데
그 깊이를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하기도 하고.
너무 깊으니까.
그런데 쏠메는 아무것도 없잖아."
"글쎄, 내면을 봐야하는거야?"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쏘울메이트는 내면이 없다.
그래서 보이지 않고
그래서 신경계를 자극하지 않는다.
그 덕에 그를 만나면 나는 평온하다.
신경계를 긁지 않는 만남.
가끔 이상하긴 하지만,
뭐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평온한 만남을 좋아한다.
익숙해졌다고 하자.
고기능 감각자들이 주로 겪는 것들은,
사람을 만나면 그 모든 사소한 순간들을 다 정보로 받아들인다.
그런 것들은 상대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가끔은 육체적 아픔을 그대로 느끼기도 한다.
그게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압박감과 무거움 같은 것들도 수반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있는 곳들은 피하게 된다.
정보가 흘러넘친다.
그것은 수많은 감각과 순간들의 집합이다.
딱히 사람을 만나기를 원치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쏘울메이트가 말한다.
"사람들을 만나봐. 그게 누구든."
"아, 피곤해.
너무 친하게 다가오거나 만나자고 자주 연락이 와."
"뭐 어때.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다 만나보는거지."
"그래서?"
"그냥 그런거라고."
"그렇군."
"하긴, 요즘은 시간이 많으니까."
"잘 됐네. 그냥 생각하는 거랑
직접 많이 만나보는 건 다르다고."
"글쎄.... 그게 뭐 의미가 있어?"
"그러니까 생각없이 그냥 만나라고. 그게 누구든."
"그래, 알았어.
그냥 연이 닿으면 닥치는 대로 만나볼께."
"만나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거지."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가끔 생각보다 먼저 몸을 데리고 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