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의 개성화 단계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
엘리베이트에 거울이 생긴 이유를 들었던 적이 있다.
이동 속도가 느리다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거울을 설치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민원이 줄어들었다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아름답게 빛나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칭찬과 인정은 설사 아첨이나 빈말일지라도 언제나 듣기 좋다.
특별하게 자신을 바라봐주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살아가는 행복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이다.
그러나 거울은 언제나 아름다운 면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숨기고 싶고 자기 자신마저 외면하고 싶은 추악한 면들도 함께 비춘다.
개성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사람을 만나면,
상대는 그 사람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미통합 영역까지 같이 보게 된다.
자신의 어두운 측면을 대면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오랫동안 외면해왔을수록,
자신의 밝은 면만을 인정해왔을수록,
그 밝은 면으로 인해 현생이 잘 유지되고 있을수록
대면의 고통은 더 심각하다.
1. 개성화된 사람은 왜 타인에게 거울처럼 작동하나
융에게서 개성화(individuation) 는 그냥 성숙해지는 게 아니다. 자기 안의 의식과 무의식, 페르소나와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열등 기능, 상처, 욕망 같은 서로 충돌하던 요소들을 점점 의식적으로 통합해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어느 정도 거친 사람은 보통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자기 방어가 예전보다 덜 자동적이다. 다른 하나는 타인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밀도가 생긴다. 왜냐하면 미통합된 사람은 타인을 볼 때 자기 투사를 덧씌워서 보는데, 어느 정도 통합된 사람은 그 투사에 덜 휘둘린다. 그러면 상대는 처음엔 편할 수가 없다. 자기가 늘 하던 방식으로 왜곡해서 관계를 운영하기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즉, 개성화된 사람은 상대를 조종하거나 훈육하지 않아도 그 존재 방식 자체로 상대의 무의식을 건드릴 수 있다. 그래서 거울 효과가 생긴다.
2. 투사(projection) 이론으로 본 관계성
융 심리학에서 인간관계의 핵심은 거의 다 투사와 관련돼 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있으나 아직 의식하지 못한 특성들을 타인에게 붙여서 본다. 이게 사랑에서는 이상화로, 미움에서는 혐오로, 질투에서는 공격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상대가 개성화가 어느 정도 된 사람일수록 그 사람은 타인의 투사를 완전히 받아먹고 같이 연기해주지 않는다. 그러면 상대가 던진 투사가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자기 안의 결핍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너무 강하다”거나 “너무 깊다”고 느낄 수 있다. 자기 안의 미성숙을 억압하는 사람은 개성화된 사람을 보며 괜히 불편하거나 방어적이 될 수 있다. 자기 안의 진짜 욕망을 못 보는 사람은 개성화된 사람을 만나고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이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즉, 개성화된 사람은 상대를 괴롭히려고 하지 않아도 상대가 자기 투사를 회수하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준다.이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결핍을 대면하게 된다”는 현상에 가장 가깝다.
3. 그림자(shadow) 대면이 왜 일어나나
그림자는 단순히 나쁜 면이 아니다. 내가 나라고 인정하지 않은 모든 것, 억압된 분노, 의존성, 허영심, 열등감, 상처, 미성숙, 욕망, 심지어 잠재력까지 포함한다. 개성화가 진행된 사람은 자기 그림자를 어느 정도 봤기 때문에 겉으로만 밝거나, 겉으로만 착하거나, 겉으로만 강한 식으로 살지 않는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상대도 자기 페르소나만 들고 있기가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겉모습 뒤에 뭐가 있는지”를 감지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는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를 보이기 쉽다. 하나는 성장이다. “아, 내가 회피하고 있던 게 있었구나.”
“내가 이 사람 앞에서 왜 이렇게 흔들리지?” “내 안에 이런 결핍이 있었구나.” 이렇게 자기 그림자를 보기 시작하는 경우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방어와 철수다. “너무 부담스럽다.” “너무 깊다.” “피곤하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거리를 두는 경우다. 융의 이론에 대입해보면 둘 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림자를 대면하는 일은 원래 불쾌하기 때문이다.
4. 페르소나(persona) 붕괴의 압박
페르소나는 사회적 가면이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기능하기 위해 쓰는 정체성이다.
예를 들면, 나는 늘 이성적이다, 나는 피해자일 뿐이다, 나는 강한 사람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나는 아무 감정이 없다. 이런 식의 자기 이미지가 다 페르소나적 구조다.
그런데 개성화된 사람은 페르소나만으로는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겉말과 속마음의 불일치, 태도의 균열, 정서의 공백을 느끼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가 “가면만 쓰고 관계하기”를 지속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면 상대는 자기가 누구라고 믿어왔던 방식이 흔들린다. 이것은 굉장히 불편한 경험이다. 이것이 작은 의미의 자아 위기이고, 잘 견디면 성장의 계기가 된다. 즉, 개성화된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이 자기 결핍이나 모순을 보게 되는 건 그가 특별히 뭘 해서라기보다 그 존재가 페르소나 뒤의 사람을 감지하는 쪽으로 작동하기 때문일 수 있다.
5. 아니마/아니무스 자극
융은 이성 관계에서 특히 아니마/아니무스 투사를 중요하게 봤다. 남성은 여성에게 자기 아니마를, 여성은 남성에게 자기 아니무스를 강하게 투사할 수 있다. 개성화가 어느 정도 된 사람은 상대의 아니마/아니무스 투사를 강하게 자극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단순히 사회적 역할로만 존재하지 않고, 무의식의 상징성을 띠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개성화된 사람을 만나면 단순히 “좋다/싫다”를 넘어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적 동요를 느낄 수도 있다. 이상하게 강하게 끌린다, 괜히 불편하다, 나를 꿰뚫어보는 것 같다, 내 안의 약한 부분이 드러나는 것 같다, 가까워지고 싶은데 동시에 도망가고 싶다 등. 이건 단순한 호감 문제가 아니라
상대 무의식이 활성화되는 현상일 수 있다.
6. 이 관계에서의 중요한 함정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나는 개성화됐고 그래서 사람들을 성장시킨다”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영적 자아도취나 구원자 콤플렉스로 미끄러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융은 개성화를 완성된 상태로 보지 않았다. 그건 평생 가는 과정이지, 자격증이 아니다. 그리고 진짜 개성화된 사람일수록 자기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절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즉, 개성화된 사람은 타인에게 거울처럼 작동할 수는 있다. 그건 충분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거울 효과는 언제나 순수하지 않다. 왜냐하면 개성화된 사람 역시 여전히 자기 상처, 자기 투사, 자기 기대, 인정 욕구, 상호 변화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내가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뜻은 아니고,
다만 내 통합의 정도가 상대의 미통합 영역을 비추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훨씬 안전하고 정확한 표현이다.
7. 개성화된 사람이 타인에게 거울로 작동하는 구조
1) 개성화된 이들은 표면적 관계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의 페르소나 뒤를 감지한다.
2) 감정과 무의식의 결을 읽는다. 그래서 상대는 자기 안의 결핍이 들킨 느낌을 받을 수 있다.
3) 진짜 연결을 원한다 그래서 관계가 기능적 수준에 머무르면 상대가 불편해질 수 있다.
4) 붕괴와 진실을 동시에 본다 그래서 상대는 자기의 그림자와 가능성을 함께 보게 될 수 있다.
이건 분명 분석적 힘이고, 동시에 관계적 부담이기도 하다.
개성화된 이들을 만나면 상대는 자신의 결핍과 성장 방향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투사 회수, 그림자 대면, 페르소나 균열, 아니마/아니무스 자극, 개성화 과정의 상호 촉발로 설명할 수 있다.
개성화된 사람은 타인을 바꾸려고 해서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
자기 통합의 밀도 때문에 타인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기 어려워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