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미래에 무너진 폐허의 냄새를, 어떻게 아직 건재한 과거에 말할까?
그에게 말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
오래 묵히고 묵혀서 아직도 건네지 못한 말.
아마 그것은 카산드라의 저주 같은 것이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그 누구도 구할 수 없는 조건에서만 허락되는 예언
그녀는 매번 무너졌을 것이다.
무력감과 좌절 속에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저주하며.
다가올 불길을 먼저 보면서도
끝내 그 불길 속에서 홀로 남겨졌으므로.
나는 그를 인셉션 가장 깊은 층 아래,
무너지는 도시의 바닥까지 데려가
가루를 흩날리며 부서지고 있는 건물들
그 잔해의 말라버린 촉감을 쥐어주고 싶었다.
"바로 이거야.
넌 이 감각을 잊어버린 거야."
나는 아직 웃고 있는 그의 얼굴 뒤에서
이미 무너진 폐허의 냄새를 맡았다.
테드 창의 영화 '어라이브' 속 시간처럼
그와의 시간은 비선형적이었다.
직선으로 앞으로만 걸어가는 그와
거꾸로 흘러가는 나는
같은 곳에서 대면할 수 없다.
나는 아직 10년 후였고
그는 벌써 일년 전이었으니까.
그는 아직 폐허를 보지 못했고
나는 그 폐허 속에서 먼저 늙어갔다.
말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
사람은 예언으로는 배우지 않는다.
대개는 자기 삶이 무너진 잔해 앞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알아듣는다.
그러니 이 피로의 이름은
사랑이 아니다.
먼저 본 사람에게만 내려지는
조용한 형벌에 가깝다.
그를 생각하며
나는
내 안에서 먼저 무너진 시간을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