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별말 아닌 한마디 뒤에 잠시 공백의 침묵이 있었는지
그건 쉽게 알아채기는 어려운 감각이다.
들숨에서 미세하게 지나가는 습한 기운
차라리 큰 사건이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칼로 깊게 찔린 상처처럼
한 번에 생긴 아픔이었다면
적어도 언제 어디가 아픈지는 분명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젖은 벽지 안쪽에서
아주 조금씩
젖었다가 말라가는 반복
서서히 번져가는 짙은
밖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안쪽에서 침묵 속에서 퍼져가는 검은 얼룩
책상을 옮기다가 알았다.
책상 뒤의 후미진 곳의 어둠은
그저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여전히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벽
스치는 손길에 물컹하는 젖은 촉감
물먹은 석고처럼 푹 꺼질 것 같은 감각
그는 늘 그 벽 앞에 서 있는 사람 같았다.
바삭바삭 말라버려서
그 속의 눅눅한 습기들을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벽
웃고 있는 그에게선 식물의 생동감이 보이기도 했다.
깊은 바다를 외면하고 있던 그는
그 작은 물방울에도 다시 살아난 듯 보였었다.
이미 비가 스며든 집 안에 들어선 사람처럼
축축한 먼지 냄새와
오래 닫아둔 방의 공기 속에서
검은 얼룩들을 혼자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아니?
넌 햇빛 아래 피어난 꽃과 같아졌는데
난 그 방의 지하실 책상 뒤 얼룩이 보였으니까.
너는 오늘의 얼굴로 웃고
난 내일의 무너진 잔해 냄새를 맡고 있는 걸.
그래서 내 몸이 느낀 감각은
비명처럼 외치는 것은 아니었다.
서서히 잠식하는 무게
그 긴긴 시간에 한 번 크게 무너지는 대신,
매 순간 조금씩 갉아먹는
갈려나가는 그 미세한 감각
사포에 피부가 스쳐가듯이
아주 작은 곰팡이 포자가 폐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분명히 몸 어딘가로 조금씩 하얗게 말라가는
너는 몰랐겠지.
아니 알고 싶지 않았겠지.
내가 왜 가만히 있다가도
그렇게 지쳐 있었는지.
왜 별말 아닌 한마디 뒤에 잠시 공백의 침묵이 있었는지.
왜 웃고 돌아서서
혼자 오래 다른 말들을 마구잡이로 늘어놓았는지.
그건 네가 날 아프게 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는 멀쩡했고,
나는 그 속에 가득 찬 물의 용적을 혼자 먼저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그 무게감.
벽을 잡아삼킬 듯한 물의 거대한 부피감
마치 아주 미세한 균열 위에
맨발로 서 있는 것 같았다.
겉으로 아무 일도 없이 멀쩡해 보이는 그 벽체
그리고 차갑고 습한 그 벽지
그 아래가 거대한 심해였다는 걸.
조금만 더 체중이 실리면
언젠가 툭 하고 주저앉아버릴 것 같다는 걸.
책상을 옮기다가
벽체에 피부가 쓸리고
검은 얼룩의 습기를 알았다.
심장 안쪽이 말라가고
숨이 짧아지는 그런 순간.
그렇게 네 바다는 내 습기를 말려버렸다.
매 순간 아주 조금씩
폐허의 먼지가 내 혀끝에 먼저 내려앉아
작은 나뭇잎이 되어
목구멍 가운데 걸리적거리며 걸려있다.
네가 바라보지 않은
그 거대한 물의 존재감이
내 시간의 표면을 문질러 끝내 투명함을 잃게 했다.
다시 투명하게 돌아갈 수 없게.
나는 그 유리 뒤에서
너를 오래 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내 안에서 먼저 무너진 시간을 혼자 오래 닦아냈다.
소용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