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다루는 법 02. 감정을 견디는 문제

정서조절 과정 이론, 경험 회피

by stephanette

자신의 감정을 알고

타인에게 그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 대하여

특히,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는 해상도가 낮거나

표현하는 과정에서 흐려지는 이유


1> 감정을 알아차리는 문제

2> 감정을 견디는 문제

3> 감정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문제

4> 그 과정에서 가면·방어·애착이 끼어드는 문제

이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누어서 살펴보려고 한다.



2> 감정을 견디는 문제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과
그 감정을 견디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제법 잘 안다.
그런데 그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너무 빨리 잘라내거나,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곧장 정리해 버린다.


즉,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충분히 머물게 두지 못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정서조절 이론, 특히 Gross의 과정모형(process model of emotion regulation)과
경험회피(experiential avoidance)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1. 정서조절 과정모형

Gross의 정서조절 이론은
사람들이 감정을 느낀 뒤에만 그것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단계부터 이미 감정을 다루기 시작한다고 본다.


사람은 감정이 커지기 전에
상황 자체를 피할 수도 있고,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릴 수도 있고,
의미를 바꿔 해석할 수도 있고,
표정이나 언어를 억누를 수도 있다.


즉, 감정은 발생한 뒤에만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발생 과정 전체에서 이미 가공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감정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이 의식에 선명하게 올라오기 전에
너무 빨리 조절해 버리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가. 슬픔이 올라오기 전에 바쁘게 움직인다.
나. 상처를 느끼기 전에 “별일 아니다”라고 해석해 버린다.
다. 분노를 느끼지만 표정과 말투를 억눌러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라. 불안을 느끼는 대신 상황을 과도하게 통제한다.


이 경우 감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단지 감정이 충분히 자각되기 전에
더 관리 가능한 형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Gross의 과정모형은 감정 조절을 다섯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은

가. 아예 상황을 피할 수도 있고,

나. 상황을 바꿀 수도 있고,

다.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릴 수도 있고,

라. 의미를 바꿔 해석할 수도 있고,

마. 마지막에는 표정이나 말투 같은 반응 자체를 억누를 수도 있다.


일상에서는 이런 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슬픔이 생기기 전에 바쁘게 움직여서 감정이 커질 시간을 없앤다.
어떤 사람은 상처받기 전에 “별 의미 없는 일이야”라고 해석을 바꾼다.
어떤 사람은 이미 화가 났는데도 표정과 말투를 눌러서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감정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조절이 너무 빨리 들어가서 감정이 의식에 충분히 올라오기 전에 잘린 상태일 수 있다.


가면, 이미지 관리, 사회적 조절 등은 바로 이 틀에서 설명하기 좋다.
특히 억제(suppression) 는 감정을 느낀 뒤에 표출을 누르는 전략이고,

재평가(reappraisal) 는 감정이 커지기 전에 의미를 바꾸는 전략이다.

둘 다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너무 자동화되면 본인도 자기 감정의 원형을 놓칠 수 있다.


2. 경험회피(experiential avoidance)

경험회피는
불편한 감정, 생각, 기억, 몸감각을
있는 그대로 겪기보다
빨리 없애거나 바꾸거나 피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핵심은 감정 자체보다
그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경험을 견디기 어렵다는 데 있다.


사람은 슬픔을 없애려 하기보다
슬픈 상태에 머무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불안한 채로 존재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감정은 자주 이런 방식으로 대체된다.

가. 슬픔 대신 분석
나. 불안 대신 통제
다. 상처 대신 냉소
라. 외로움 대신 과잉행동
마. 그리움 대신 상대를 평가하거나 폄하하는 태도


이런 경우 감정은 부정된 것이 아니라
우회된 것이다.


감정을 견딘다는 것은
그 감정을 과장하거나 붙드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내 안에 지나가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을 못 견디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의 통과를 허용하지 못하는 사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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