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량 NO, 재료 NO, 이니셜도 NO, 이것은 우주혈통쿠키다
어째 오늘 오후에는 쿠키 제의가 없다.
"어쩐 일이지? 조용한데."
고요함이 불길하다.
집 안에 초콜릿 냄새도, 버터향도, 마시멜로 향도,
설탕과 밀가루가 우주 먼지처럼 흩날리는 기미도 없다.
둘째에게 물었다.
"오늘은 브라만의 우주적 쿠키 제의가 없나요?"
둘째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굽고 있는데."
"잉? 언제 만들었어?"
"집에 오자마자."
"전혀 몰랐는데? 그렇게 빨리?"
"응"
그 순간, 오븐이 말했다.
"띵!"
우주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인간이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다.
하긴, 램프의 지니가 오늘도 커피 두 잔을 보냈다.
지난번 7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선물에 이어 두 잔 더 왔으니
완성의 숫자 9만큼의 축복을 받았다.
넘쳐흐르는 검은 축복이라니.
무엇의 완성이란 말인가.
어제 받은 예언의 실체를 보여준다는 말인 건가.
잠시, 나는 그 의미 앞에서 침묵했다.
둘째가 오븐 앞으로 걸어갔다.
"오~~ 다 됐어."
그리고 곧장 내게 쿠키를 내밀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뜨거워서 꺼내달라던 쿠키판은
오늘은 어느샌가 식탁 위에 올려져 있다.
"엄마 먹어봐 봐."
나는 한 입 먹었다. 입에 넣기도 전에 합격이다.
"이야~~ 진짜 잘 만들었네. 파사삭 바사삭해. 버터향 으으으"
둘째는 씌익하고 웃는다.
이런 만족스러운 표정이라니.
방금 우주 하나를 구웠다는 자의 표정이었다.
나는 물었다.
"와~~ 비법이 뭐야?
최상위 브라만이자 쿠키 마스터 수준인데?"
둘째가 말했다.
"응. 베이킹파우더를 안 넣었어."
"잉??"
나는 잠시 쿠키를 내려다보았다.
여느 카페에서 파는 수제 쿠키의 외양이다.
베이킹파우더를 안 넣었다고?
그런데 딱딱하지 않다.
모양도 완벽하다.
버터향에 바로 판매해도 될 정도다.
이건 이상했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쿠키였다.
베이킹파우더 없이 완벽한 쿠키를 완성했다.
자기 자신으로도 충분한 쿠키.
나는 심각하게 물었다.
"레시피는 뭘 보고 한 거야?"
"그냥 대충 넣었어."
"뭐라고? 다음엔 어떻게 만들어?"
"응, 적어뒀어."
아.
이 아이는 위험하다.
첫째가 거의 10년 만에 도달한 쿠키 마스터 단계에
둘째는 일주일도 안 돼서 도달했다.
그것도 시행착오 두 번 만에.
가문 내 제과 권력의 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니, 그 시작도 알아채지 못한 채 권력 이동은 완전히 종결되어 있었다.
어제 난 예언을 들었다.
"가문으로 돌아가라. 가서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 그 에너지를 받으라.
숨겨졌던 힘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아~ 난 그 예언을 듣고
어떤 힘인지 정말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도 안되어서
이렇게 바로 가문에 대대로 전해지던 에너지의 현현을 마주하다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으흐흑"
그러나, 기쁜 날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
쿠키 에너지 앞에서
난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엄마, 친구들 나눠줬더니,
다음에도 쿠키 만들다 실패하면 자기들한테 버려달랬어."
"ㅋㅋㅋ"
실패작에도 수요가 있다.
이것이 진정한 브랜드의 탄생이다.
"초코펜으로 꾸미기를 할 거야. 뭘 그리지?"
나는 진지하게 조언했다.
"응 네 이름 써서 나눠줘."
"ㅋㅋㅋㅋ 그게 뭐야. 웃기잖아."
"네 자음만 써서 줘."
"ㅋㅋㅋㅋ"
둘째는 쿠키에 자신의 이니셜 보다 더 특별한 그 무언가를 고심하고 있다.
"그럼 참가하는 팀이름을 써."
"팀 이름이 없는데."
"아님, 부스전시회 이름을 써."
"ㅋㅋㅋㅋㅋㅋ 더 웃겨. 욕 같아."
둘째는 브랜딩에서 발음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면, 만화 캐릭터를 그려봐.
'황공하게 이런 그림을 그려주시다니,
오~ 최상위 브라만 제사장이여,
영광 무궁이옵나이다.'라고 그러게."
"ㅋㅋㅋㅋ 초콜릿 사러 가자."
"ㅋㅋㅋㅋㅋ 그래."
그렇게 쿠키에 그림 그리기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제의다.
가정 내 우주 질서의 재편이다.
버터와 밀가루와 설탕이 만나 탄생하는 작은 문명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분명히 보았다.
브라만 쿠키 제의의 2세대가 출현했다.
베이킹파우더 없이도 무너지지 않는 아이.
대충 넣고도 기록은 남기는 아이.
실패작마저 친구들이 기다리게 만드는 아이.
이제 나는 안다.
쿠키는 굽는 것이 아니다.
계승되는 것이다.
가문의 혈통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