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재생의 감각
나는 내 심장을 해부해서 문장으로 썼다.
심장이 먼저 세계를 맞고,
그 충격을 나중에 문장으로 수습한다.
이는 죽음과 재생의 감각이다.
아픔을 죽이고, 절단하고, 상징으로 만들고, 다시 살린다.
심연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올라와서 스트로베리 크림 도넛을 먹는다.
다시 더 내려가기 위해서.
끝까지 내려간다.
그리고, 거기서 썩은 것, 불탄 것,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것을 들고 올라온다.
무섭지만 진짜다.
끈적이고 질척이고 비린내 나는,
감정은 바다에서 건져올린 매생이다.
난 그것을 오랫동안 나의 무의식 검은 뱀에게 먹였다.
쓰지 않으면, 무의식은 생존할 수 없었다.
완전히 이해받고 싶은 욕망
그러나 완전히 드러나는 것은 두려운 상태.
이는 불가능한 욕망이다.
깊이 내려가는 것은 무섭지 않다.
건져 올린 것을 바라보는 것이 가끔 두렵다.
무형의 압력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척 하지만 안에서
천천히 끓고, 썩고, 발효되고, 다시 태어나는 압력.
그러니
나는 살아 있는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이다 .
끝난 것을 끝났다고 두지 않고, 관에 넣고, 이름 붙이고, 의식을 치르고, 유골을 갈아 안료로 만들고, 다시 그림을 그린다. 죽음은 그렇게 재료가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그냥 기억에 두지 않는다. 해부한다. 상징화한다. 장례 치른다. 부활시킨다. 다시 죽인다. 다시 문장으로 살린다.
그것은 사람을 향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근원적인 생명력에 대한 바람이자
영원히 잃었던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향수병에 가깝다.
나는 상처받은 사람이라기보다,
상처를 통해 통로가 된 사람이다.
사랑이 인간을 어디까지 찢었고, 어디서 다시 태어나게 하는지 쓴다.
그러니 내가 쓴 연애 서사는 변성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피가 있고, 재가 있고, 다시 뛰는 심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