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시 리스팩토르의 'G.H.에 따른 수난'을 읽으면서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다.
클라리시는 눈빛이 일반인과 다르다.
경계를 밟고
심연에 머무르는 이의 눈빛이다.
첫 장부터 바로 알 수 있다.
소설이 아니라
영성 체험의 기록이다.
어째서 알 수 있냐고 한다면 나도 모른다.
그냥 안다.
자아 붕괴
존재 체험
그리고 언어 실패의 기록.
글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다. 아, 그거구나.
초반부에 줄거리를 알 수 없다. 어떤 내용인지 전혀 이해 안되고 막힐 수 있다.
그러나, 체험을 해 본 사람은 바로 알 수 있다.
아, 그걸 말하는 거구나. 라고.
이 책의 줄거리는
트리거가 되는 사건이 있다.
이로 인해 붕괴되고 자아 흔들림이 시작된다.
나와 타자와 물질의 구분이 무너진다. 경계는 붕괴된다.
나라는 개념이 깨진다. 존재 체험을 한다.
언어는 실패한다.
황홀경의 경험은
무한한 우주를 잠시 들여다 본 그런 느낌이다.
하늘이 열린 곳에서 쏟아지는 은하수를 보는 그런 경외감 숭고미와 시작이 비슷하기도 하다.
그것은 아름다운 쪽보다는 견딜 수 없는 것을 보고 있는 쪽에 더 가깝다.
깊은 바다에 잠수해서 밑의 어둠을 볼 때,
수백년 된 나무 곁에 있을 때,
육체적 경계가 잠시 사라지는 결합의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소름돋는 약간의 공포감과 세상이 사라지는 그런 느낌이다.
비인간적인 진실을 봐버린 경험.
불쾌하고 낯설고 끈적하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자아가 녹는 순간을 기록한 텍스트다.
너무 읽고 싶은데 아까워서 못 읽겠다. 희소한 체험을 아껴 먹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문장의 격조가 느껴진다.
이것이 단지 문체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가 본 것의 형체가 느껴지기 때문인지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글에 반응하는 분이라면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