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시카 월드의 상징 해석 사전 2

백지수표

by stephanette

릴리시카 세계관에서 백지수표는 돈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백지수표는 욕망의 대가, 책임의 가능성, 아직 쓰이지 않은 약속, 감당하지 못한 관계의 비용을 의미한다.


백지수표는 네가 원한다면 어디까지 지불할 수 있느냐를 묻는 상징이다.

그러니, 백지수표를 건넸다는 것은 네가 원하는 것은 무한대로 지불하겠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는 그것을 잃어버린다.

그러니 화자는 슬프다.


퍼즐을 건넸는데 풀지 않는다면 슬플 수 밖에 없다.

어째서 그렇게 돌아가느냐고 한다면, 릴리시카 월드는 그렇다.

세계관 룰이 그런 것을 왜 그러냐고 하면 그래서 그러니까 그런거라고 할 수 밖에.


백지수표는 금액란이 비어있다. 빈칸이 있다는 것은 가능성은 열려있지만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상징은 다음을 동시에 품는다.

무한한 가능성

무한한 책임

무한한 부담

아직 실행되지 않은 약속

말은 했지만 대가를 치르지 않은 욕망


사랑에서 백지수표는 이런 질문으로 바뀐다.

"나는 너를 원한다. 그런데 그 욕망의 값을 실제로 치를 수 있는가?"


연애에서 많은 사람은 감정을 말한다.

좋다. 보고싶다. 끌린다. 사귀자. 나중에. 언젠가. 몇 년 뒤.


하지만 백지수표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백지수표는 묻는다.


그럼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

시간인가.

정직함인가.

일관성인가.

선택인가.

설명인가.

책임인가.

자기보호를 내려놓는 용기인가.


그래서 백지수표는 로맨틱한 상징이 아니라 관계의 회계 장부에 가깝다.


그 남자가 백지수표를 잃어버리는 설정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는 감정의 가능성은 열어두지만, 그 가능성의 금액을 적지 못한 사람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이런 상태다.

퀴즈를 풀고 자격을 획득했고 그래서, 수표는 받았다.

그러나

금액은 쓰지 않았다.

빈칸을 채우지 않았다.

지급일을 확인하지 않았다.

지급일 이전, 은행에서 분실신고나 재발급을 하지도 않았다.

백지수표를 잃어버렸다.


이것은 관계에서 말하는 '반쯤'이다.

사귀자고 말할 수는 있다.

만나자고 말할 수는 있다.

분위기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관계가 요구하는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면, 그건 미결제 욕망이다.


백지수표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책임의 공백이다.

금액이 비어 있다는 것은 멋있어 보일 수 있다.

원하는 만큼 써.

다 해줄게.

가능성은 열려 있어.


하지만 현실에서는 무섭다.

왜냐하면 비어 있는 칸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값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그 빈칸이 지속되면, 관계는 무너진다.

해석한다.

기다린다.

의미를 붙인다.

감당한다.

몸으로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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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 서서 내면을 지켜보며 영혼의 지도를 그려가는 사람입니다. 글이라는 리추얼을 통해 말이 되지 못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며 길을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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