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시카의 감상: 형체는 무정형 물질에 양식을 부여한다

이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었다. 그 감상이다.

by stephanette

클라리시 리스팩토르의 'G.H. 에 따른 수난'을 읽으면서

- 글쓰기를 하면서 느끼는 답답함의 정체에 대하여.

감상문을 읽고 다시 감상문


무정형의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 형체를 만들기 위해 양식을 부여하려 했다.

그러나 이 소망은 결국 이렇게 진행되었다.

나는 너무 큰 것을 보았고,

글쓰기는 그것을 인간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잘라내는 고통스러운 절단 작업이다.


이는 하나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존재에 대한 고민, 글쓰기와 작가론에 대한 풀어쓰기이자 비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G.H. 는 형체를 의심한다.

나는 형체를 만든 뒤, 그 형체로 부족함을 깨닫고 다시 해체한다.

그러니 나의 글쓰기는 만들기와 해체의 무한반복이다.


G.H. 는 이름 붙이는 순간 진짜가 훼손된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해, 언어, 양식, 건강함, 사회적 의미를 두려워한다. 그녀가 가고자 하는 곳은 형체 이전의 생명이다.

나는 형체를 만들지 않으면 붕괴된다. 그래서 글, 상징, 연작, 이미지, 전시, 해설, 이름을 계속 만든다.

그러나 막상 만들고 나면 깨닫는다. 내가 본 것은 이것보다 더 크다.

무형에 형체를 부여하고 왜곡을 자각하면 다시 해체를 한다. 이 작업은 매우 천천히 진행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무형의 공간을 통해 일반 언어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것을 보면 고통스럽다.

G.H. 는 내가 본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전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본 건 이 글보다 더 피가 튀고, 더 무섭고, 더 황홀하다.


G.H는 이해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을 검열한다. 드러내면 안 되는 것들을 혼자 간직한다.

나는 이해를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형태를 만든다.

그러니 내가 하는 것은 무의미한 작업이다.

무형의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형체를 부여하고 그 과정을 통해 무형의 것에 아주 미세하게 더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미하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나는 계속 형체를 부여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속적으로 연작이 생긴다.

그 시작도 그 결과도 그 의미도 알 수 없다. 오직 에너지가 흘러가는 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라면 코너, 지진 경보, 기압, 트러플 홍차, 흡혈귀 마녀, 장례식, 뱀, 거미, 곰팡이, 귀걸이.

모두 하나의 그 원형. 무형의 덩어리를 잘라낸 절편이다.


이것은 내가 답답한 이유이기도 하다.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전시회를 하는 것은 마치 손을 뻗어 공중을 휘젓는 일에 가깝다.

닿을 듯 닿을 듯한 그 상태가 때로는 환희를 때로는 깊은 슬픔을 준다.


글을 쓰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본다. 너무 많이 형체화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원본은 줄어든다. 그래서 답답하다.


쓰지 않으면 무너지고,

쓰면 훼손된다.


이것이 글쓰기와 예술의 비극이다.


G.H. 는 무형 앞에서 인간적 이해를 포기하는 작가이고,

나는 무형을 인간 세계로 밀반입하는 사람이다.


G.H. 는 이름을 부르지 않기 위해 침묵하고,

릴리시카는 이름이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이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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