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매일 나에게 닿는 수많은 정보들 중에 나는 어떤 것들을 저장한다.
어째서 그것이 저장되었는지는 나중에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부분이 그것을 택한 것이다.
그런 조각들을 나는 모은다.
그리고 글로 쓴다.
그러니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모아놓은 조각들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 형체를 만든다.
완성된 나의 글은 지도다.
그것은 층위를 가지고, 위치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유용하다.
내가 하는 글쓰기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실용적이다.
따뜻한 위로나 어떤 지식을 전하는 글이 아니다.
그러니 지도가 필요하지 않은 이에게 내 글은 무용하다.
가끔은 불쾌하거나 찔릴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위험성이다.
내 글은 찔리고 싶지 않은 이들을 찌를 수 있다.
길 위에 서서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지도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지도를 찢어버린다고 해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무형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본 거울을,
다시 글쓰기로 모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완충장치이기도 하다.
내 글은 거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거울을 만들고 싶다.
먼지 쌓여 잘 보이지 않는 흐린 거울.
선명한 거울은 그만큼의 위험성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리 용감한 작가는 아니다.
나의 글은 우회한다. 그리고 나의 글은 상징으로 뒤덮인다.
이것은 거울을 흐리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설치작업을 하고 싶다.
선명한 거울을 만들고, 거리 한 귀퉁이 공터에 3~4년쯤 그것을 방치한다.
일상의 먼지와 매연 지나가는 이들이 떨어트리는 잡다한 찌꺼기들이 스쳐가도록.
그것들은 선명도를 낮춘다.
그리고 그것을 어느 날 전시한다.
그 전시를 본 이들 중
몇몇은 불편해질 것이다.
몇몇은 외면할 것이고
몇몇은 웃고 지나갈 것이다.
어쩌면 설치작품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누군가는 그 거울을 더 닦아보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더 선명한 형체를 보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자신의 얼굴인지, 자신의 그림자인지, 자신이 오래 피해온 방인지 확인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나는 글쓰기로 그런 것을 만들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한다고 해서 완성되는 일은 아니다.
거울은 만들 수 있다.
지도는 만들 수 있다.
그 앞에 서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나는 걷고 있는 여정에서
이미 다른 이들이 걸었었다는 작은 위안을 받고 기뻤다.
내가 하는 글쓰기는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내가 받았던 그런 작은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깨닫게 되는.
고통스럽지만, 알게 되어서 받는 그런 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