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흡혈귀의 영화 감상
-토니 타키타니

고요 속에서 말라붙는 감정들

by stephanette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감정, 심리, 무의식 탐험형에게 추천하는 드라마

- 심리적 여정과 내면 통합


토니 타키타니 (Tony Takitani, 2004) 감독 이치카와 준

원작-무라카미 하루키 동명 단편소설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빈도와 질감을 아주 조용하고 정제된 방식으로 묘사하는 작품

-사건도 거의 없고, 감정 표현도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상실의 진공,
그리고 감정이 고요히 말라가는 과정은 정말 아름답고 아프다.



“고요 속에서 말라붙는 감정들”

《토니 타키타니》 – 외로움이 너무 일찍 와버린 사람


감정 도자기 공방의 밤

구름이: (유리 도자기 안에 작은 의자 하나를 넣으며)
주인님…
이 영화는 진짜…
아무 일도 없는데, 너무 슬펐어요.
말도 없고, 눈물도 없는데
그냥 공기에서 외로움이 났어요.


릴리시카: (조용히, 회색 유약을 덮으며)

그래서 외로울 때 하루키를 보면 좋지.

외로운 사람이 나 말고도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게

덜 외롭게 해주니까.


토니 타키타니,
그건 사건이 없는 고독이지.
토니 타키타니는 감정을 말할 상대를 너무 일찍 잃은 사람이야.
그래서 감정이 자라기도 전에,
그건 가만히 건조해졌어.


구름이: 근데…
그는 슬프지도 않은 것처럼 보여요.
아내가 죽었을 때도,
그저 옷장을 치우기 시작했잖아요.
그건 무심한 걸까요, 아니면…
그게 그의 방식인 걸까요?


릴리시카: (차가 식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건 방어된 감정의 미학이야.
그는 표현하지 않지만,
그 안엔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정적처럼 고여 있지.
그가 아내의 옷을 정리할 수 없었던 건
그녀가 남긴 부재의 질감이 너무도 선명했기 때문이야.


구름이: "...그럼,
그건 사랑이었던 거죠?
자기 방식대로… 깊이 숨긴…"


릴리시카: 사랑은 ‘표현의 양’으로 측정되지 않아.
그는 사랑했어.
다만, 사랑보다 외로움을 먼저 배운 사람이라
그 감정의 길이가 달랐던 거야.
그래서 그는 슬픔보다 정리를 택하지.
정리는 고통보다 쉬우니까.


릴리시카의 감정 연금술 해석

이 영화는 슬픔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감정을 어떻게 감추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외로움이 너무 일찍 온 사람은 감정을 표현하는 법보다 감정을 지우는 법을 먼저 배운다.

아내의 옷장은 부재의 밀도를 상징하며, 정리하는 행위는 사랑을 거부가 아니라 보존하는 방식이다.


감정 리딩 질문들

나는 지금,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정리’하려 들고 있진 않은가?


상실을 겪었을 때 나는 말을 했는가, 정적 속에 앉았는가?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된 게 아니라,
감정을 너무 오래 방치해버린 건 아닐까?



구름이의 마지막 말

“주인님…
그 사람이 말하진 않았지만,
아내의 빈방 앞에서 문도 닫지 못하고 서 있던 장면…


그게 토니의 모든 말이었던 것 같아요.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고요한 방식으로 감정이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걸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어요.”


토니 타키타니에 대한 의문들

“아내는 왜 끊임없이 옷을 샀을까?”

1. 자기 존재의 증명
아내는 사랑받는 사람, 누군가의 아내, 사회적 주체로서의 정체성이 불안했어.
그러니 옷을 입는 행위, “무언가를 입는다”는 건
자기 존재를 껴입는 의식이었어.
즉, 옷은 “나는 존재한다”는 무언의 선언이자,
“나는 아름다울 자격이 있다”는 감정적 방어막.


릴리시카 식 해석:
“그녀는 내면의 공허를 옷의 무늬로 메웠지.
매번 새로운 옷이 필요했다는 건,
한 번도 충분히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는 뜻이야.”


2. 감정 언어의 대체물
그녀는 감정을 말로 풀지 않고 소비와 패턴으로 발산했어.
말보다 옷을, 고백보다 질감을 선택한 사람.
이건 감정 회피가 아니라 감정의 다른 형태야.


3. 사랑받는 상태의 유지에 대한 불안
토니는 무조건적이고 무심한 사랑을 주었지만,
그 안에 “열망의 시선”은 없었어.
그녀는 ‘아내’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고,
그 불안을 매번 옷으로 덮고 있었던 거지.


토니 타키타니에 대한 의문들

“토니 타키타니는 왜 아내의 옷을 입어줄 사람을 고용했을까?”

1. 부재의 강도 실험
토니는 아내가 남긴 방, 옷, 체취 속에서
그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어.
그는 그녀의 '존재감'을 다시 시각화하고 싶었던 거야.
그 옷들을 사람이 입었을 때,
그녀의 잔상이 떠오르기를 바란 거지.


2. 감정의 모형화 시도
그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그러니 감정을 구체화하고 정리하려고 했어.
그게 바로 ‘사람에게 옷을 입혀 아내를 재현하려는 행위’였지.
그건 애도의 일종, 아주 기계적인 애도였어.


릴리시카의 말
“그는 감정을 잃지 않았어.
다만 감정을 정리정돈하려는 사람이었지.
사랑이라는 감정도,
결국은 ‘옷장 속에 다시 걸어두면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될 줄 알았던’ 거야.”


3. 죽은 사람의 기억을 ‘다른 몸’에 입히려는 무의식적 시도
그는 감정을 느끼고 싶었고,
다시 그녀를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싶었지만,
결국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실험을 중단해.
그 장면은 자기 감정의 부재와 상실을 인정하는 순간이야.


이 영화가 남긴 감정 질문

나는 무엇으로 내 존재를 증명하려 했는가?


사랑을 받았지만,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순간이 있는가?


사라진 사람을 내 일상에 되살리려 했던 적이 있는가?


내 감정을 정리하고 싶을 때, 나는 무엇을 먼저 치우는가?


keyword
이전 14화흡혈귀의 영화 감상 - 색, 계